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부키(주) 황선도 지음

'물고기 박사'로 유명한 황선도 박사가 신간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에서 우리나라 바닷물고기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맛깔스러운 입담으로 풀어놓는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11월 읽을 만한 책 과학분야에 선정된 이 책은 각 장을 나눈 방식부터 독특하다. 매월 가장 맛있는 제철 물고기 16종을 선정해 1월부터 12월까지 차례로 설명한다.

1월 명태, 2월 아귀, 3월 숭어, 4월 실치와 조기를 거쳐 11월 홍어와 12월 꽁치와 청어로 마무리한다. 각 장에서는 물고기 이름의 유래와 관련 속담, 맛있게 먹는 법, 조사 현장에 겪은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12월은 과메기의 계절이다. 겨울철 별미인 과메기의 '지존' 자리를 두고 물고기들의 자존심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원조인 청어와 대중화 주역인 꽁치가 그 주인공. 재미난 것은 여기에 정어리가 끼어들어 묘한 '삼각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래 과메기의 원료는 청어였다. 그러다 1960년대 어획량이 줄면서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데, 청어가 사라진 시점에 정어리가 갑자기 늘었다. 최근, 사라졌던 청어가 돌아오고 꽁치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어리를 눈여겨볼 차례. 올겨울엔 이 얘기를 안주 삼아 '원조 과메기'를 맛봐도 좋겠다.

또한 맛과 영양이 좋지만 회로는 먹지 않는 뱀장어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뱀장어의 피에는 이크티오톡신이라는 독이 있어 이 독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이크티오톡신은 인간의 체내에 들어가면 중독 증상을 일으키지만 열을 가하면 독성이 없어진다"고 설명한다.

이 밖에도 '고등어는 왜 등이 푸를까' '넙치와 가자미는 눈이 왜 한쪽에 몰려 있을까' '자연산 복어에는 독이 있는데, 왜 양식한 복어에는 독이 없을까' 등 한 번쯤 품어봤을 여러 의문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녹여 답한다.

책 제목에서 언급한 멸치 머리 블랙박스는 '이석(耳石)'을 일컫는 말이다. 평형기관 구실을 하는 이석은 단단한 뼈를 가진 경골어류가 갖고 있는데, 쪼개어 성장선을 분석하면 이 물고기가 며칠에 태어났는지까지 알 수 있는 등 여러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오랜 세월 바다를 지켜 온 해양수산학자의 삶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태평양 거친 파도에 뱃멀미가 나 정신을 잃기도 하고, 밤새 뱀장어를 조사하고 돌아와 소주 한잔에 출출한 뱃속을 달래기도 한다. 어민들과 오래 인연을 맺은 덕분에 낙동강 한가운데서 자연산 뱀장어를 대접받기도 하고 민어회, 갈치속젓 같은 별미에 회포를 풀기도 한다. 맛과 멋이 함께하는 글 속에는 학자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출판사 부키 관계자는 "매월 가장 맛있는 제철 물고기를 선정해 생태는 물론 조사 현장에서 겪은 재미난 일까지 맛깔나게 들려준다"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서 바닷물고기를 다룬 첫 교양서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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