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불황·양극화로 생겨난 좌절감과 파괴력, 인터넷과 만나 무차별 범죄로 이어지는 설정, 일본 젊은세대 현실적 문제 문학적으로 풀어

결괴 1, 2문학동네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 이영미 옮김

1999년 장편 '일식'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일본 현대문학의 기수로 꼽혀온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38)의 '결괴'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11월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됐다.

총 2권으로 범죄로 인한 개인 혹은 사회의 분열과 파국을 심도 있게 담아냈다. 또한 실제 범죄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충격적인 소재와 스릴러적 요소를 지닌 내용은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본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바 있다.

내용은 지방도시에서 평범한 회사원인 료스케가 엘리트 공무원인 형 다카시에게 묘한 열등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인터넷에 속마음을 기록한다.

그리고 광활한 전파의 바다 맞은편에서는 집단괴롭힘을 당하는 한 중학생이 살인에 대한 망상을 키워나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출장지에서 갑자기 실종된 료스케가 갑자기 토막난 사체로 발견되고 다카시는 동생을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이유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만다.

뒤이어 비슷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범죄의 파문은 사회 전체로 번져나가고,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또 다른 악마적인 계획이 남몰래 진행된다. 걷잡을 수 없는 악의와 도쿄를 덮친 무차별 테러, 마침내 살인자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결괴'란 댐이나 제방 등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결국 한계를 넘어 한꺼번에 무너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 책에서는 오랜 불황과 양극화가 가져다준 좌절감과 파괴력이 익명의 비난을 가능케 해주는 인터넷과 만나면서 무차별 범죄로 이어지는 설정이다.

지난 9월 내한한 바 있는 작가는 "2000년대 들어 두 가지 사건에 주목했는데 하나는 미국의 9·11 테러였고 또 하나는 인터넷의 확산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9·11 사건으로 가치관을 공유할 수 없는 타인과의 거리를, 인터넷의 확산으로 타인의 압도적 다양성을 알게 됐다"며 "인터넷의 등장으로 사회와 개인에 대한 익명의 비난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러한 인터넷의 어두운 부분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범죄를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신작의 배경을 설명했다.

작가가 '결괴'를 쓰면서 감안했던 또 하나의 배경은 불황과 양극화 속에서 일본의 젊은 세대가 갈 곳을 잃었다는 점이다.

작가는 "(어릴 때) 학교에서는 개성을 발휘해 살라고 가르쳤는데 취업할 때가 되니 경제가 나빠져 젊은이들이 '나는 왜 살아가야 하나', '내 개성은 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나'를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결괴'가 출간되고 나서 일본에서는 실제로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인터넷으로 수차례 범행을 예고했던 20대 청년이 2t 트럭을 몰고 행인들을 덮친 뒤 흉기를 휘둘러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친 일명 '아키하바라 살인사건'이다.

당시 이 끔찍한 사건의 예고편이나 다름없었던 '결괴'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작가는 범죄와 살인을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과 용서'를 주제로 삼아, 왜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가, 사람을 용서한다는 건 어떤 것인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는가 등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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