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기적 축하한다면 선수단 지원책 고민해야

이종욱 스포츠레저부장

얼마전 우연한 기회에 포항스틸러스 선수단 버스를 타고 포항에서 인천까지 간 적이 있었다.

이날 구단 스태프들만 타고 갔기에 나는 황선홍감독 자리에 앉아 가는 행운을 누렸지만 이 기쁨도 불과 1시간여 만에 초라함으로 다가왔고, 포항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가득 찼다.

이날 버스는 인천으로 가기에 앞서 U리그 결승전을 보기 위해 영남대 운동장을 먼저 찾았고, 때마침 결승전 상대인 영남대와 홍익대 선수단 버스 옆에 주차를 시켰다.

벌써 8살이 된 버스이니 초라한 것은 당연했겠지만 대학선수단 버스보다 더 누추한 모습을 보면서 '이게 한국 프로축구 최고 명문구단의 버스가 맞나'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지간한 회사라면 이미 내구연한이 지나 새 버스로 갈아치웠겠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구단은 결국 버스를 바꾸지 못했고, 당장 내년 연봉인상을 걱정해야 하는 사정상 내년에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고 구단경비를 줄이기 위해 좁은 스틸야드안으로 사무실을 이전하고, 불용자산을 처분하고, 제주 원정까지 당일치기로 다녀온 장성환사장을 비롯한 구단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강철전사들은 이 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를 누비며 FA컵 2연패와 K리그 클래식 우승이라는 팀 최초의 더블우승 위업을 이뤄냈다.

특히 국내 프로축구단중 유일하게 용병도 없고, 걸출한 스타도 한명없는 선수단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나는 올시즌 포항이 치른 49경기중 거의 모든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외롭게 싸우는 우리 철강전사들이 대견스러웠고, 고마웠다.

내가 힘이 된 것은 결코 아니겠지만 강철전사들은 매 경기마다 처절하게 싸웠고, 그 백미는 지난 1일 울산전 경기종료 30초전이었다.

김재성이 올려준 프리킥이 골키퍼 앞쪽에 있던 김광석앞으로 날아가 바운드되면서 울산 골키퍼 김승규가 엉겁결에 쳐낸 뒤 옆으로 흘러나오자 김태수가 쓰러지며 재차 문전으로 볼을 보냈다.

박성호는 문전으로 날아온 볼을 가차없이 슛을 날렸고 이 볼이 상대수비 손을 맞고 흐르자 이번에는 김원일과 신영준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울산골문으로 꽂아넣었다.

포항은 불과 5초가량의 시간동안 무려 여덟번이나 볼터치가 이뤄지며 기어코 골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황선홍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은 물론 장성환사장을 비롯한 구단스태프까지 운동장을 내달리며 가슴속에서 치솟는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 그들에게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찬사들이 터져나왔고, 같은 날 오후 7시 30분 포스코본사 대회의실에 마련된 더블우승 축하리셉션장에도 포항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대거 참석해 포항의 기적을 함께 나눴다.

그러나 나는 이날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철강전사들이 피땀으로 일궈낸 기적을 축하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없었느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가 어떤지, 그들이 어떤 곳에서 묵으며 경기를 치르고 있는지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외롭고 힘든 경기를 펼쳐온 강철전사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것은 나 뿐일까?

올해 지원을 끊어버린 회사나 5억원도 되지 않는 지원금을 내고도 생색만 낸 포항시, 그리고 경기장 한번 제대로 찾지 않다 우승한다니까 애써 찾아준 정치인들, 이들 모두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진정 포항의 위업에 축하하는 마음이 있다면 포항의 위상을 높여준 우리 강철전사들이 편안하게 타고다닐 수 있는 선수단 버스를 선물하는게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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