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 초상화 중심으로 고사·도석 인물화 소개, 김홍도·신윤복 작품으로 풍속 인물화 세계 조명, 사람이 나오지 않는 그림으로 화가 마음 읽어내

사람 보는 눈손철주의 그림 자랑 현암사 손철주 지음

손철주 미술평론가가 최근 출간한 '사람 보는 눈'은 '사람 볼 줄 모르는 시대에, 사람을 그린 우리 옛 그림'을 찬찬히 살핀다. 그림 속에는 일하는 사람과 노는 사람, 꽃을 보는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 숲을 걷는 사람과 물에 가는 사람 등이 등장한다. 옛 사람들의 생김새와 매무새, 차림새와 모양새부터 그 품새와 본새의 알짬을 읽어내는 저자의 눈썰미가 흥미롭다.

이 책에는 총 85편의 그림이 실렸다. 그 중 70여 편이 사람이 등장하는 인물화다. 인물과 더불어 어떤 소재를 다루느냐에 따라 산수 인물화, 고사(故事) 인물화, 풍속 인물화, 신선이나 초월의 세계를 그린 도석(道釋) 인물화 등으로 나뉘는데, 그 중 인물화의 백미는 단연 초상화다.

1부 '같아도 삶 달라도 삶'은 여인 초상화를 중심으로 고사 인물화와 도석 인물화를 주로 소개하고 있다. 어여쁘게 치장한 여인네, 교양이 풍기는 책 읽는 부인, 야무지게 입을 오므린 근엄한 사대부 여인, 조신하고 당당한 스물세 살 여인의 심지가 아련하게 다가온다. 여기에 그리다 만 듯 쓱쓱 그은 붓질로 표현한 '삿갓 쓴 사람', 서늘하고도 맑은 신선과 검선(劍仙), 승려의 그림들은 '덜 그려도 다 그린 그림'들의 단순하고 담백한 경지를 보여준다.

2부 '마음을 빼닮은 얼굴'에 등장하는 23편의 초상화들은 오래가는 초상의 힘이 무언지 일러준다. 대상의 생생한 주름과 섬세한 의복은 물론 인물의 허풍과 겸양, 고집과 기골, 매운 눈초리와 무거운 입술, 꼿꼿한 차림과 생색내는 장식 등까지 꼼꼼하게 묘사한 조선의 초상화들은 '얼굴은 마음을 닮고, 사람의 일은 얼굴에 새겨진다'는 것을 담았다. 즉 '실존이 본질이 되는' 우리 그림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를 찬찬히 읽어내는 손철주의 '그림 보는 눈'은 덩달아 독자의 그림 읽는 눈을 밝혀준다.

3부 '든 자리와 난 자리'는 풍속 인물화의 소박한 세계를 보여준다. 주요 화가는 단연 김홍도와 신윤복이다. 단원의 풍속화들은 정겹고 따습고, 혜원의 야릇한 그림들은 정답고 뜨겁다. 여기에 사람살이의 잔정과 설움이 비쳐 그립기도 하고, 늙은 음심과 젊은 난봉기질이 쑥덕여 망측하기도 하다.

4부 '있거나 없거나 풍경'은 산수 인물화 몇 점과, 인기척이 없는(사람이 나오지 않는) 그림 10여 편을 담았다. 친숙한 산수 인물화 또한 우리네 시선과 소망을 담은 심상인데, 흐르는 강물과 가을 달빛, 온 산의 홍엽과 적막한 겨울 풍경을 보고 '가슴에 멍든 이 누굴까' 묻는 지은이의 설움이 낯설지 않다. 꽃, 포도, 원숭이, 닭, 기러기 그림이 사람 마음을 담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 보는 눈'은 보편적인 삶의 그리움을 담는다. 옛 사람들의 얼굴과 차림새, 옛 풍속과 정취, 우리네 언어와 사연, 조상의 뜻과 마음씨가 들어 있다.

지은이는 사대부의 체통과 여인네의 은근함, 남부여대 행상의 남루한 밥벌이와 노는 이들의 느긋함, 기생의 수작과 은사의 고독, 윤기 흐르는 수박과 토실토실한 암탉 그림에서 우리네 오래된 정한을 읽는다.

특히 눈길을 잡는 것은 거죽(생김새)과 꾸민 티(매무새)에 인물의 풍상과 속내까지 배게 그려낸 초상화의 힘이다.

즉 '본질을 잡아내는 사람 보는 눈'의 탁월함이다. 예를들어 '운낭자 상'에서 당코 저고리의 동정과 치마 끝에 살포시 내민 흰 버선발을 주목하거나, '송인명 초상'의 뻐드렁니에서 포용력을 읽어낸다. '이하응 초상'에서는 칼집에서 뺀 칼에서 대원군의 서슬을 읽거나, '심득경 초상'의 붉은 입술에서 그린 이의 애통함을 읽을 수 있다.

'임매 초상'에서는 '캐캐묵은 사람'의 심지를, '정몽주 초상'에서는 사마귀를 통해 인물의 체취를 붙든다.

한편, 손철주 미술평론가의 저서인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는 1998년 초판 발행 후 미술교양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아 '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90년대의 책 100선'으로 꼽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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