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궁 핵심유적 복원도

■대한민국 문화의 원형

한반도 최초 통일국가 대위업을 달성한 통일신라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경상북도'는 대한민국 문화의 원형이다. '경상북도'는 신라불교문화의 경주와 유교문화 안동, 대가야문화 고령 등 한국을 대표하는 3대문화의 고장이다. 또 '조국수호의 화랑도정신', '선비정신', '항일구국항쟁의 민족정신', '호국정신', '조국근대화의 새마을운동 정신' 등 한민족의 정신과 정체성·혼의 원류이기도 하다. 특히 △60년대 대구 섬유 △70년대 포항 철강 △80년대 구미 가전, 90년대 정보기기 △수많은 지도자 배출·역사발전의 주역 등 국가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안동 하회마을 전경

○황룡사 구층탑·월성 등 세계최고 수준 예술성 자랑

○원효스님 대중불교 활동-성리학 완성 회재 이언적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등 정신적 문화의 보고

○퇴계 이황·서애 유성룡 등 유학자 배출 유교 본향 안동

△경주는 천년왕국의 수도, 삼국통일의 중심지

2014년은 신라가 건국한지 2071년이 되며 막을 내린지는 1079년이 되는 해이다. 신라는 1천년에서 8년이 모자라는 992년(기원전 57년~935년)을 존속한 세계사적인 국가이다. 고구려는 705년(기원전 37년~668년), 백제 678년(기원전 18년 660년), 고려 474년(918년~1392년), 조선 518년(1392년~1910년)간을 존속했다.

세계 역사상 신라보다 오래 존속한 나라는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 뿐이다. 동로마제국의 존속기간은 1천58년(395년~1453년)으로 신라보다 66년이 길다. 그래서 신라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 존속한 국가이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 등 삼국과 한반도 쟁패를 놓고 치열한 전쟁을 벌여 삼국통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동맹을 한 당나라의 한반도 지배 야욕을 물리치고 진정한 통일국가를 완성했다.

따라서 경주는 단순히 관광을 하는 도시가 아니라 신라천년의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한국을 알기 위해 경주를 다시 만나다

경주를 알기 위해서는 신라와 삼국통일이 한국 역사와 한국인에 갖는 역사적 의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천년왕국의 수도였던 경주는 산과 같은 왕릉과 문화 유적이 도심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왕릉 옆을 걷노라면 마치 옛 신라인들이 걸어 나와 이야기를 걸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왕릉 속에는 지금도 왕과 대신들이 국정을 논하거나 연회를 즐기고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이 생길 정도이다.

신라인들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예술성과 규모를 자랑하는 황룡사 구층탑을 비롯해 웅장함을 보여주는 월성, 신라 과학의 상징인 첨성대, 수준 높은 불교문화의 현장인 남산, 불교조각의 백미 석굴암 등 숱한 문명을 창조했다. 경주는 그런 위대한 문명으로 가득찬 역사 도시이다.

그 성과물들은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자리에서 당시의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 경주야말로 대한민국의 원형이 탄생한 곳이다.

경주에는 '경주 언어가 대한민국의 표준어'라는 말이 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등 삼국 중 최약체로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통일국가를 이룩함으로써 한국문화의 원형을 태동시켰다.

또 경주는 현대 한국인의 DNA의 일부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생애 한번쯤 경주를 만나고, 무의식중에 경주에서 보고들은 것들을 되새김질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역사(歷史)는 가정(假定)이 없다

항간에는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곱지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고구려 전성기 때 가지고 있던 만주와 요동지역의 광활한 영토를 잃어버린 반쪽 통일이라는 것이다. 고구려가 통일국가가 됐더라면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역사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더라면 넓은 영토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있지도 않은 역사적 상상에서 추론하는 가정에 불과할 뿐이다. 설혹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더라도 그 영토를 유지할 수 있었을지, 신라와 같이 천년동안 통일국가를 이어올 수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고이다. 역사는 그저 있는 사실에 근거해 평가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신철학의 담론 생산 거대지식 창고, 경주

원효스님의 통섭철학 등 벌써 2000여년 전부터 우리 민족은 높은 정신적 문화를 향유했다.

신라의 대표적 고승이자 사상가인 원효스님의 화쟁사상 등 사회통합을 아우르는 통섭철학은 2천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시대적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 동안 오랫동안 전쟁이 이어져 삼국인들은 물질적 정신적 피폐가 극에 달했다. 서로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타민족같이 살았던 삼국민들은 통일로 인한 이질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서 철학적 담론이 필요했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원효가 나타나 대중불교 활동을 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상처 봉합과 삼국민의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철학적 토대 위에 경주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오면서 정신적 고향 역할을 계속해왔다. 고려는 신라불교를 이어받은 나라이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경주는 유학적 토양이 충실한 곳으로 나라를 떠받드는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 했다.

경주 양동 출신인 회재 이언적은 16세기초 태극(理)을 우주의 체(體)로 삼는 태극론(理論)으로 주자의 성리학 체계를 확립했다.

이언적의 학문은 퇴계 이황으로 이어졌고 영남·남인·소론의 주리파 학맥을 이뤘다.

조선후기 들어 사상의 공동(空洞)으로 성리학은 영향력을 상실했고 18세기 서학(천주교)이 주리론적인 남인계열에 의해 수용됐다. 19세기에는 관념을 탈피하는 최한기의 기학(氣學)으로 새로운 사상이 대두된다.

경주 현곡 용담정에서 시작된 동학이 바로 그것이다. 동학은 성리학과 서학이 제시하는 내재와 초월을 충족하는 운동으로 종교가 아닌 새로운 가치관에 따른 삶의 실천운동으로 나타났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는 경주 현곡면 가정리에서 근암공 최옥과 곡산 한씨 사이에 독자로 출생해 부친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근암공은 퇴계의 학통을 이어받은 당대의 거유(巨儒)이다. 동학은 불교와 유교, 선(仙)과 서학(천주교) 사상을 통합한 사상체계이다.

동학사상의 본체는 시천주(侍天主), 즉 '인간이 곧 우주'여서 만인평등의 수평적 인간관계를 뜻한다.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은 철저한 계급사회여서 민초들은 출신성분에 따라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는 불평등 사회에 신음했다. 따라서 민초들은 동학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주장을 펼치자, 전국에서 경주로 구름같이 모여들어 동학의 세가 급격히 확대된다. 이처럼 경주는 신라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사상적 근간 역할을 담당해왔다.

△유교문화의 본향, 안동

안동은 예로부터 조선의 사상체계를 떠받드는 유교의 본향 이었다.

퇴계 이황과 서애 유성룡 등 안동은 숱한 유학자들을 배출하면서 조선을 경영하는 철학 이념을 생산했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곳으로 제일 먼저 찾을 정도로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안동에는 현존하는 목조건축물 중 최고(最古)인 천년고찰 봉정사와 영의정 유성룡 선생의 출신지인 하회마을,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 각종 유교문화 유적이 즐비하다. 성주풀이의 본향이 안동 제비원이다.

△대가야문화의 정수, 고령

한때 신라와 경쟁하고 철 생산과 농업 기반을 중심으로 번성을 구가했던 대가야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록돼 대가야문화가 주목을 받고있다.

주산을 중심으로 704기나 보존돼 있는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사적 제 79호)은 고령군에 위치해 있다. 금동관이 출토된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은 매장문화재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군집돼 있는 탁월한 아름다움과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대가야왕릉전시관은 사적 제79호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대가야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 무덤인 지산리 제44호 고분의 내부를 재현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전시관 건물 또한 무덤의 모양처럼 직경 37m,높이 16m 규모의 초대형 돔식 구조로 지어져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주요 전시물은 국보 제138호 금관 및 부속금구(가야금관) 복제품 등 300점, 고령 고아동 벽화고분 모사도, 반룡사 석탑과 반룡사 동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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