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은 우리나라 구상화(具象畵)의 1번지다. 산수화의 서화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호남과 다르게 영남지역은 진경산수화에서 비롯된 구상화가 큰 화맥(畵脈)을 형성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경북·대구는 우리나라의 산천을 우리의 시각으로 그려낸 진경산수화가 겸재(謙齋) 정선(1676~1759)과 깊은 인연이 있다. 겸재는 46세 때인 1721년부터 6년 동안 지금의 경산시에 속한 하양현감으로 재임하면서 지금은 전해지지 않지만 경상도 일원의 명승을 그린 '영남첩'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다.

또 그가 1733년 포항의 청하현감으로 부임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1735년까지 머물면서 '내연산 삼용추', '청하읍성', '골굴암', '도산서원' 등의 작품을 남겼다. 청하현감으로 있을 때 그의 대표작인 '금강전도'를 그리기도 했다. 그의 사실적인 작품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는 현재 유통되고 있는 천원짜리 지폐의 도안에도 사용됐다. '계상정거도'는 정선이 퇴계 이황 생존시의 건물인 서당을 중심으로 주변 산수를 담은 조선시대의 사실적 풍경화다. 정선이 영남지역에서 뿌린 진경산수화풍의 씨앗은 조선시대 말까지 많은 화가들의 화폭에 면면이 이어졌다. 강세황의 '도산서원도', 이의성의 '하외도십곡병'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근대에 접어들어서도 진경산수화의 맥을 잇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사실적인 구상회화가 영남지역에서 유독 강세를 보인다. 일본 유학파를 중심으로 향토색이 짙은 자연주의 화화양식이 도입됐다. 개화기 대구를 중심으로 경주 등 영남지역 화가들이 모여서 우리나라 근대화단의 한 줄기를 형성한다. 이쾌대, 이인성, 김용준, 서동진, 서달진 등이 대표적 화가들이다. 이들은 익숙한 지역의 산천과 삶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다.

혼란스럽고 복잡다단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대미술의 질풍노도 속에서도 영남지역의 자연주의적 사실화풍은 굳건히 맥을 잇고 있다. 이러한 전통을 잇는 지역의 미술작가들을 위해 포스코가 지난 2008년부터 매년 '구상1번지-영남구상의 진수전'을 열고 있다. 김일해, 김종준, 여환열, 이철진, 최복룡, 최용대, 허성길 등의 대표작들이 전시되고 있다. 22일까지 포스코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작품전은 꼭 한 번 봐야 할 의미 있는 전시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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