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인간의 저주다. 현존하는 책의 90%는 시원찮은 것이며, 좋은 책은 그 시원찮음을 논파(論破)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내려진 최대의 불행은 인쇄의 발명이다" 디즈레일리의 촌철이다. 책은 인간의 기억이고, 상상력이며 사유의 표현이지만 펄프가 돼 준 나무에게 부끄러울 정도의 것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진나라 재상 여불위가 큰돈을 들여 30만자나 실은 책을 만들었다. 이것이 '여씨춘추'다. 여씨춘추는 모두 26권 160편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이다. 여불위는 여씨춘추를 집대성한 뒤 의기양양해서 이색적인 출판기념 행사를 열었다. 함양 성문 앞에다 책을 쌓은 뒤 천금을 걸어두고 "누구든지 이 책에서 한 자라도 덧붙이거나 빼는 사람에게는 천금을 주겠다"는 방을 써 붙였다. 30만자 중 단 한글자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일자천금(一字千金)'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 후보들의 출판기념회가 봇물이다. 세를 과시하고 얼굴을 알리는데 효과적인 데다 합법적으로 후원금까지 챙길 수 있으니 후보자들로서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중앙 정치권은 물론 포항에서도 시장선거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책 출판과 기념 모임이 열리고 있다. 공원식 경북도관광공사 사장이 이미 지난해 11월 30일 자전 에세이 '줄기러기는 두 번 에베레스트를 넘는다'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예비후보 등록 한 달 여를 앞두고 이재원 화인피부과 원장이 지난 17일 '의사 이재원의 포항진단-포항을 알면 미래가 보인다'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18일에는 모성은 한국지역경제연구원장이 '꼴찌학생 서울대 강단에 서다-꼴찌교수'의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창균 대통령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자문위원도 '꿈에게 길을 묻다-연오랑 해를 건지다'출판기념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강덕 전 해양경찰청장도 내달 중 출판기념회를 열 계획이고, 박승호 현 시장도 지난 8년간의 포항 변화를 이끈 이력을 담은 화보집 형식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출판기념회는 선거 90일 전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3월 초순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정치지망생들이여, 여불위의 '일자천금'의 본은 받지 못하더라도 잡서(雜書)를 안기면서 줄세우고, 정치자금을 끌어 모으는 일은 자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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