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미국의 어느 재판장에서 있었던 일화다. 일흔이 다 된 한 노인이 재판장 앞에 서 있었다. 검사가 노인에게 물었다. "남의 가게에서 빵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네" 노인은 아무런 변명없이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노인은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막막한 의지할 데 없는 노인입니다. 죄는 미우나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어 죄를 지었습니다. 관대한 처벌을 바랍니다" 변호인의 변론이 끝나자 검사는 법 앞에 어떤 사람도 예외일 수 없다며 엄벌을 요청했다. 판사는 검사의 엄벌의사에 곤혹스러웠다. 병든 노인을 감옥에 보낸다는 것은 너무 가슴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이 노인은 배가 고픈 나머지 남의 가게 물건을 훔쳐 벌을 받은 적이 있는 누범자였다. 판사는 노인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싶었지만 법정 최저형인 벌금형을 내렸다. 그리고는 판사는 자신의 법복을 벗고 방청객 앞으로 걸어갔다. "방청객 여러분 저 노인은 죄인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의 가슴은 말할 수 없이 아픕니다. 저 노인이 죄를 짓도록 한 것은 어쩌면 이웃인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저 노인에게는 벌금을 내놓을 돈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모두 낼 능력도없습니다. 제가 반을 낼 테니 여러분도 도와주십시오" 판사의 호소에 방청객들의 얼굴은 환해졌다. 모두들 하나같이 기쁜 마음으로 자신들의 지갑을 열었다. 금방 벌금을 낼 돈이 모아졌다.

우리나라에도 법에도 눈물이 있음을 보여준 판결로 '법정 온정'이 화제가 된 사례가 더러 있다. 더 이상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해 식물인간 상태가 된 딸의 인공호흡기를 떼 숨지게 한 아버지에 대해 법원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려 가슴 뭉클하게 했다. 최근엔 군대에서의 구타로 정신병에 걸려 33년째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50대 남성측이 국가를 상대로 벌인 소송에서 법이 정한 시효가 20년이나 지난데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례적으로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당사자와 가족의 피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원고에게 2억400만원과 이자를 배상하라고 퍈결, 법에도 따뜻함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비정치적 사안에서 소멸시효를 초월한 아주 드문 명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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