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도 다 동의해 주지 않았느냐" 중요한 경제 현안에 대해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신용카드사의 고객 정보 유출 사고를 두고 국민의 부주의 탓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으로 국민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퍼붓는 국민 정서를 외면한 망언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경제부총리가 처음 생긴 건 1964년 5월로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영 한은 부총재를 초대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임명했다. 오늘날 우리 경제의 초석을 깐 것은 개성이 강하고 걸출한 초기 경제부총리들의 리더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영 경제부총리의 별명은 '불도저'였다. 그리고 '왕초'라고 불렸다. '외자 다다익선'을 외치며 외자도입을 통한 성장을 주도했다. 재무 상공 건설 등 경제부처 장관들을 불러모아 밤늦게까지 회의하기 일쑤였다. 장관들의 의견이 팽팽히 엇갈릴 땐 슬쩍 자리를 피했다가 장관들이 지쳤다싶을 때 나타나 "회의 다시하자"며 분위기를 다잡아 장관들을 질리게 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의견을 듣기엔 시간이 아까워 밀고 나갔다"며 '불도저'의 변을 토로하기도 했다.

3대 김학렬부총리는 이름자 '학(鶴)'의 일본어 발음을 따 '쓰루'로 불렸다. 그리고 그의 깐깐한 성정에 빗댄 것이기도 했다. 고등고기 1회 출신으로 신생 한국 관료의 선두주자라는 자부심도 강했다. 비상한 기억력으로 각종 경제수치를 훤히 꿰고 아랫 공무원들에게도 철저한 업무파악을 요구했다. 미진하게 보이면 직급불문하고 그 자리에서 욕설도 서슴치 않았다. 호통을 들은 부하가 혼이 나가서 문이 아닌 캐비닛을 열고 들어갔다는 일화는 널리 회자됐다.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 아래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건설을 주도해 한국 경제를 도약의 길로 이끌었다.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5년4개월의 역대 최장수 부총리였던 '한국의 에르하르트' 남덕우는 별명이 '너구리'였다. 논리정연한 설득력과 노련한 재벌 견제로 얻어진 별명이다. 조선,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 육성은 지금 한국을 먹여살리는 밥줄이 됐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부총리들에 비해 현오석 부총리는 한국 경제를 이끄는 조타수로는 함량미달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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