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포항 1세대 화가들 이야기 (6) - 1919년 경주 출생 1세대 화가, 소학교시절 담임 권유로 입문, 강사 재직 때 후학양성에 힘써

이종기 포항시립미술관 도슨트

화가 손수택은 1919년 경주에서 출생해 소학교시절 돌바닥위에 그린 그림을 본 담임선생의 권유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1세대 근대화가 중 해외 유학 한번 가지 않고 순수 독학으로 공부한 화가이다. 철도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결혼 후 자녀들을 둔 상태에서 홍익대 회화과에 입학, 체계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으나 가정 형편상 3학년 때 중퇴하고 말았다. 경주여고 미술강사로 재직하면서 미술공부를 열심히 지도해 여러 학생을 유수대학에 입학시키는 등 후학양성에 힘썼다. 그 후 미술과 사업을 병행하며 지냈으나, 당시 석굴암으로 가는 길 주변에서 투자한 여관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크게 기우러졌고, 이에 낙담한 나머지 오래 동안 술로서 지내기도 했다.

1974년 겨울 어느 날 그는 고혈압으로 쓰러지면서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왼쪽 팔다리가 마비되어 거동하기 힘든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림그리기에 열정을 쏟아 국전에 2회 입선까지 했다. 그 후 개인전과 초대전, 미협전 등에 출품하며 그림활동을 계속하다가 세 번째 병이 재발함으로써 1978년 작고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과 달리 붓 대신 주로 나이프로 그림 그렸다고 한다.

지난달 23일까지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된 작품 '부산항'은 해변건물과 바다, 그리고 내항 일부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으로 보이는 데, 나이프로 문질러 그린 탓인지 풍경이 마치 외국의 어느 항구처럼 색상이 유연하고 고풍적이며 이국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어느 땐가 꽃밭을 그린 그림을 마당에 세워놓으니 나비와 벌이 날아들 정도로 그의 그림은 특별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 중 경주 안압지를 배경으로 한 '5월의 여왕'이 국전에 입선하고, 또 그 그림을 청와대에서 구입하게 되는 영광도 안았다. 그를 잘 아는 경주의 현역 화가인 최용대씨의 말에 의하면, 그가 투병생활 중 딸이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리어커에 싣고 계림 숲에 나와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어느 날 자기를 알아보고 '최 군, 보래이 ! 신(神)이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재?' 하며 불편함을 애써 감추면서 쓸쓸하다고 했다. 또한 평소 그를 좋아하고 따랐던 관계로 그의 그림중 하나인 '첨성대'를 구입해 소장하고 있었는데 이번 전시장에 내다 걸었다고 하며 '훌륭한 선배화가의 그림을 갖고 있어 행복하다'고했다. 최씨는 이번 미술전시회를 위해 1세대 경주출신화가들의 유작이나 유품들 수집에 힘썼다.

손 화백은 조선미전 입선과 대한민국미전 2회 입선을 했고, 때때로 개인전, 초대전. 기타미협전에도 출품하면서 예술에 대한 열정을 그림으로 표출해내었다.

또한 작품 '안압지', '추경', '첨성대', '부산항', '포구'를 통해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그렸다. 이 중 첨성대(1960)는 남쪽 남산을 뒤 배경으로 한 첨성대가 주변 수풀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인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 주변의 허허한 모습과는 영 딴판으로 세월의 변천을 실감케 한다. 독학 미술공부에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며, 어려운 환경에 병마와 싸우면서도, 왕성한 창작의욕을 펼쳐온 그의 미술인생이 지난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조명되어 매우 다행스럽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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