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혜성 이야기 - 역사속의 혜성, 혜성의 과학사(주)사이언스북스 / 안상현 지음

지난달 경남 진주에서 네 번째로 운석이 발견되면서 혜성과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역사 속에서 밤하늘에 긴 꼬리를 끌며 나타나는 혜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재앙의 전조이자 혁신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문학과 과학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4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된 '우리 혜성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혜성이 간직한 비밀에 한 발 다가서는 책이다. 우리 조상들의 별자리를 소개한 안상현은 현재한국천문연구원의 선임연구원으로 있으며 우주론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다. 저자는 2001년 사자자리 별똥소나기를 계기로 '고려사'에 기록돼 있는 별똥(meteor·유성)과 별똥소나기(meteor shower·유성우) 기록을 분석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기록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역사천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책은 사람들의 기록 속에서 혜성과 천문학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옛 문헌 속에 잠자고 있던 혜성에 얽힌 이야기들을 찾아내 2000년 전부터 오늘까지의 하늘을 펼쳐 보인다.

우리나라의 혜성 관측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다양한 옛 문헌 속에서 발견된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관상감(觀象監)이라는 천문학 관청에 속한 천문학자들이 날마다 하늘을 관측해 국왕과 조정에 결과를 보고하는 체계가 잘 갖춰져 있었다. 이 보고서들 중 측우기 측정 등 기상에 관한 것이 '풍운기(風雲記)'이며 천문 현상에 관한 것이 '성변측후단자(星變測候單子)'이다.

'우리 혜성 이야기' 표지에 쓰인 '성변측후단자'는 바로 1664년 12월 23일(음력 11월 7일) 밤 11~1시에 관측된 기록이다.

최남선은 1910년 5월 '소년'에 실은 '핼리 혜성을 환영함'에서 핼리 혜성의 출현에 대해 적고 있다. 그는 혜성의 모습, 성질, 궤도를 설명하고 혜성은 재이가 아닌 자연 현상이라면서 전쟁, 역병, 기근, 홍수, 지진 등 큰 재앙이 생긴다거나 나라가 멸망한다거나 지구와 충돌해 지구가 부서진다는 이야기는 모두 과학적 지식이 없었던 시대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영국의 에드먼드 핼리는 이 혜성이 주기 혜성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알아냈다. 그가 예측한 시기에 예측한 위치에 이 혜성이 나타났으므로 이 혜성은 첫 번째 주기 혜성으로서 핼리의 이름이 헌정되었다.

'핼리 혜성을 환영함'에 따르면 아시아에서는 진시황 7년(기원전 240년)부터 이 혜성을 관측한 기록이 있고 당시까지 29회나 출현했으며 우리나라 기록을 보면 고려 성종 8년(989년)부터 영조 35년(1759년)까지 11차례 핼리 혜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연세대에 소장돼 있는 '천변등록'들 가운데 1759년 3월의 '성변등록'은 바로 핼리 혜성을 관측한 기록이다. 영조 때 최고의 관상감 천문학자인 안국빈과 그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천문학자 김태서가 관측한 총 25일에 걸친 관측 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전해 오는 것이다. 핼리가 돌아오리라 예측했던 그 혜성을,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발표하고 에드먼드 핼리가 혜성의 궤도를 연구한 지 50여 년이 지난 1759년, 이역만리 조선의 천문학자들도 관측해 그 기록을 남겼다. 안국빈과 관상감 천문학자들의 핼리 혜성 관측이 있었기에 우리도 핼리 혜성의 관측 기록을 남긴 매우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혜성의 위치 측정으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을 뒤흔든 튀코 브라헤, 여섯 살 때 본 거대한 혜성을 보고 한평생 천문학을 사랑하게 된 케플러는 물론이고 1985~1986년 핼리 혜성의 사진을 찍고자 자작 천체 망원경을 만들며 천문학의 꿈을 키웠던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 회원들에 이르기까지, 긴 꼬리를 끌며 지구를 찾아온 혜성에 매료된 수많은 사람들이 천문학의 역사를 다시 써 왔다.

이 책은 천문학자와 아마추어 천문인, 그리고 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혜성의 역사와 역사 속의 혜성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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