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불리할지언정, 법을 믿고 묵묵히 수긍하는 '신뢰이익' 회복이 시급하다

김찬곤 경북과학대학 교수

얼마 전 1만5,600원의 돈을 훔치고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한 노숙인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비범한 관심을 받았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임에도 세간에 회자된 데는 소위 '5억 일당 노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판결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때문으로 보인다. 그 노숙인은 '재범'이라는 점. 그 회장은 '개인적으로 취한 이익'이 없다는 점이, 법이 그런 형량을 판결한 이유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1만5,600원으로 3년의 형을 살게 된 그 노숙인은 하루 15원도 안 되는 일당인 셈을 감안하면, 전 회장의 하루 일당 5억 원은 너무 지나치다는 일반인의 주장이 결코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죄명이 다르다고는 하나 양자의 차이는 무려 3,000만 배 이상이나 되니 형평성 논란은 당연해보이고, 부랴부랴 일당 5억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답시고 부산을 떠는 모습은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흔히 '법은 만인에 평등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법관은 자신의 개인적 의견보다 사회적 기준이 되는 엄격한 판단을 요한다. 환경이나 여건이 다르다하나 그 사람이 지은 죄에 있어서는 적어도 보편타당한 합리적 기준에 대한 가치관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준은 단죄의 의미도 있지만, 조금도 빈틈없는 논리적 사회질서를 창출하고 유지해가는 규범으로 인정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노숙인에 대해서 담당판사는 "생계형 범죄지만 법 때문에 형량을 더 낮출 수 없으며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과잉형벌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그 회장에 대해서는 "엄벌이 마땅하지만 세금을 납부한 점, 사재를 출연하여 그룹회생에 힘쓴 점을 참작했다"고 한다. 과잉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관적 생각 때문에 하루 15원의 형량을 선고하는 일이나, 후에 국세 136억 원과 지방세 24억 원 및 금융부채 230억 원을 납부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세금을 완납했다고 하면서 그룹 회생을 위해 사재를 출연한 것을 선의로 해석한 사실 등은, 객관적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는 단순히 비교되는 하나의 사례라기보다는 그동안 우리가 존경의 대상으로 삼아온 법에 대한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사건으로 손색없다. 이는 '신뢰이익'에 대한 크나큰 도전으로, 지금까지 법의 판단은 대단히 엄격하고 객관적이어서 그 어느 누구도 사사로이 개인적 감정을 개입할 수 없다는 경외감과 존경심을 일시에 사라지게 하기도 한다. 어떤 사실을 신뢰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인, '신뢰이익'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번 일로 법이 가지는 '신뢰이익'의 손해를 느끼는 사람이 많아질 수 있다. 어떤 사실이 유효할 것으로 믿고 행한 의사결정이 적절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쓸모없이 되어버린 희생이나 손해의 심정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효로 된 법률행위에 관하여 신뢰하지 않았더라면 발생할 수 있는 이익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손해라는 불신이 팽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일당 15'원과 '일당 5억'이라는 그 판결이, 이런 판결이 없었더라면 억울하지 않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삼 억울함과 불평을 되새기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불리할지언정 법을 믿고 묵묵히 수긍하던 많은 사람들의 '신뢰이익'의 회복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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