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경제번영 성공신화극은 소멸, 전쟁은 反생성소멸 법칙이다

안영환 편집위원

인간집단은 전쟁을 하지 않고는 응집되지 못하는 걸까.

인류사를 보면 지구 도처에서 집단화를 위한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구 소련의 몰락으로 냉전체제가 해체되었을 때 바야흐로 평화가 지구촌 구석구석에까지 찾아올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유럽의 경계선 우크라이나에서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21세기 동북아의 화약고가 되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북핵 문제로 남북 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치킨게임의 연속이다. 북한 소행으로 의심되는 무인기로 난리다. 휴전이 된 지가 언젠가. 전쟁 중인지, 아닌지, 휴전선에는 2백만 명에 달하는 양쪽 군대가 총을 겨누면서 온갖 첨단무기와 대량 살상무기로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주변에는 북한을 무찔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그리 되면 헐벗고 굶주린 그곳 인민들만 희생될 개연성이 더 크다. 북한 지도부가 핵으로 반격이라도 하면 남한 수도권의 애꿎은 시민과 노동자들만 몰살당하게 된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핵공격에도 견뎌낼 지하 벙커에 은신해 있다가 여차하면 해외로 도망칠 게 뻔하다. 인류 전쟁사의 시나리오가 다 그렇다.

인간은 참혹한 전쟁을 겪은 다음 울고불고 참회하며 평화에 대해 말한다. 숭고한 인간애라든지 자기희생적 휴머니즘의 감동을 주는 문학과 그 밖의 예술작품들은 포악한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에서 나온다. 19세기 불후의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상류층보다는 자기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가여운 민중들에게 이유 없이 가해지는 가혹한 징벌의 실상이 대서사시로 펼쳐진다. 그들이 깨우쳐져 평화를 갈망하며 실천해 나가지 않는 한, 평화는 요원한 것이라는 은유적 메시지가 오늘의 한반도 상공에도 신기루처럼 떠도는 듯 싶다.

평화가 불완전하게라도 얼마간 지속되면 전쟁의 악에 관해 반성해 마지않던 종교지도자들마저 돌변하여 불의를 물리치기 위한 중세 십자군 운동 같은 '정의의 전쟁'이니, 코란을 지키기 위한 '성전'을 부추긴다. 인간은 기독교의 칼뱅주의자들이 말하는 대로 '카인의 후예'로서 원죄를 타고 나 남을 살상하기 좋아하는 심성을 지닌 걸까.

정치인들은 이데올로기를 끌어들여 상대를 타도하자고 한다. "자유와 정의를 꽃피우기 위하여 전사들이여, 앞으로 나아가라!", 이 얼마나 웅변적인 수사인가.

이제 이런 수사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가 전쟁이 끝난 후 종교인들이 회개하고 예술가들이 시와 소설과 그 밖의 예술작품을 쓸 수 있게 하지 않을 터이다. 모조리 죽일 테니까 말이다. 어마어마한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국가 지도자들이 기존 사고의 틀을 벗어던지지 않는 한, 반만년을 자랑해온 한반도 문명이 잿더미로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문명 자체가 몰락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지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동아시아 경제번영의 성공신화극의 막은 내려지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국가의 번영 여부와는 관계없이 새봄 새싹이 움트듯 내 앞에 나타난 손녀를 안으면서 전쟁의 공포가 더 커진다. 전쟁은 자연의 자연스러운 생성소멸의 법칙에 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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