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민주 이념 천명한 임정의 위상, 역사적 사실에 맞게 계승 발전시켜 통일 이뤄내고 민주주의 성장시켜야

어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수립일이다. 1919년 4월 13일, 3·1운동 정신을 계승해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나라의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수립 선포한 대한민국 임정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1990년부터 정부공식으로 기념해오고 있다. 임정 수립일은 두 가지 점에서 우리민족이 근대국가로 출발한 날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그 하나요 민주공화국이란 정체((政體)가 또 하나이다. 임시 정부는 우리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된다는 뜻을 가진 '대한민국'이란 연호를 처음 사용했다. '대한(大韓)'은 대한제국을 계승한 것이지만 '민국(民國)'은 군주국이 아닌 즉 백성의 나라란 뜻이다. 1919년 3·1운동으로 형성된 임정의 후신이라고 헌법전문에 나와 있고, 9월 1일 관보를 냈을 때 사용한 연호가 '민국 30년'이었다. 대한민국 시작을 1919년으로 본 것이다.

다음은 정체문제다.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는 3·1정신을 집약한 것이 임시헌장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로 함"이다. 임정의 민주공화적 정체가 현재 우리헌법 제1조 1항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다. 군주국의 나라였던 대한제국이 무너진 지 불과 9년 만에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면서 임정이 출범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이를 이어받아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것은 근대 세계사에서 한반도의 경제기적에 앞선 정치기적이다. 민주공화국 조문이 대한민국 정체를 규정하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임정이 없다면 과연 미국이 한국을 독립시켰을지 의문이다. 해방이 자력에 의한 독립이 아니고 2차 대전 승전국인 연합국이 해방시켜준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과 베트남 등은 독립시켜주고 아이누족의 영토였던 홋카이도(北海道)와 오키나와(琉球)왕국은 왜 독립 시켜주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보면 유추할 수 있다. 1872년 일본에 의해 식민지로 병합한 류큐왕국은 1945년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군에 의해 점령되었지만 1972년 미국은 일본에 반환했다. 한국은 3년 만에 자치정부를 세우도록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두 나라는 한국이나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남 같은 강렬한 독립의지를 나타내지 못했기에 미국이 독립시켜주지 않은 것이다. 한민족이 1909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919년 3.1만세운동, 1920년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의 2,500명 독립군이 5만 명의 일본군을 대파한 청산리전투처럼 전 세계에 독립의지를 나타낸 것과는 다르다란 말이다.

이제 자주·민주이념을 천명한 임정의 위상을 역사적 사실에 맞게 복원하고 그 항일 독립정신과 민주공화제 이념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이념을 계승하는 것은 지금이라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적 정기를 세우고, 분단된 남북을 하나로 묶어 내는 통일을 이뤄내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성장시켜야 한다. 특히 민주주의와 관련해 임시정부와 제헌헌법의 기본 이념은 정치적 측면에서는 자유민주주의적 요소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김대중 정권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는 신자유주의는 임정과 그를 계승한 제헌헌법의 이념과는 분명히 다르다.

구한국 시절과 일제강점기 자주 독립 근대국가를 세우려는 의지의 원동력은 지역적으로 분석해보면 의병이 가장 먼저 일어나고 독립운동가들이 가장 많은 경상북도다. 민주공화정부로서 국민주권을 만천하에 천명한 최초의 근대 정부인 임시정부의 숭고한 법통을 기리고, 선열들의 순국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경북도와 대구시의 시도민들이 또 다시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임정의 뿌리는 당시 경북민들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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