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월12일 미국 국무장관 에치슨은 국제관계에 대한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소련과 중공(中共), 그들의 위성국가들을 포함한 공산국가들을 향한 경고였다. 미국의 영향권에 속하는 국가에 대한 공산국가의 침략이나 공산혁명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태평양지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말하면서 일본만 언급하고 갓 독립한 남한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았다. 스탈린과 김일성은 그들이 호시탐탐 노리던 남한이 미국의 보호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남한에 대한 에치슨의 불분명한 메시지는 정치적 이유로 더욱 복잡하게 꼬였다. 당시 미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의원들은 민주당 출신 대통령인 트루먼의 외교정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트루먼이 남한을 원조하기 위해 의회에 6천만 달러를 요청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거부당했다. 또 남한 군대를 현대식 무기로 정비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500명의 자문단과 교육인원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법안도 의회에서 무산됐다. 모스크바와 평양에서는 미국이 한국을 버리고 있다고 확신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루먼의 아시아지역 특사 존 포스터 덜레스의 공식 발표도 공산주의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의도였으나 성명서에 전형적인 외교적 수사만 나열해 경고 메시지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었다.

1950년 6월25일 김일성은 결국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공했다. 남한은 소련의 군사지원을 업은 북한군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과 UN의 적극적이고 강경한 대응에 스탈린과 김일성이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련이 실제로 트루먼의 군사적 대응을 예측했더라면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 말이다. 수백만명의 사망자, 수십만명의 UN군 전사, 700만 이산가족의 고통이 아직까지 계속되는 '6·25'는 정치인의 불분명한 언사가 몰고 온 엄청난 대가다.

새정치연합의 정청래 의원이 "무인기의 북한 소행은 코미디다"며 불분명한 '무인기 음모론'을 제기, 새정연의 고질인 '안보부실'에 대한 국민들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천안함 폭침 때의 음모론을 방불케 하는 정의원의 괴담성 발언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악재중의 악재로 대가가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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