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형을 마치고 가석방을 앞둔 한 남자가 고향의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며칠 뒤 버스를 타고 집 앞을 지날 텐데 아직 나를 사랑한다면 동구밖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 주오. 리본이 없으면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당신을 영원히 떠나겠소." 버스가 동네 어귀를 들어서자 누군가 소리쳤다. "노란 리본이다!"그의 집 앞 참나무 가지마다 수백 개의 노란 리본이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나무에 리본 하나만 매달면 보지 못하고 지나칠까봐 가지마다 노란 리본을 매어두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리기도 한 이 이야기는 1971년 뉴욕포스트의 칼럼니스트 피트 해밀이 '귀향'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듬해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이 글을 다시 실었고, ABC-TV는 단막극을 만들어 방영하고, 1973년에는 그룹 토니 올랜도 앤드 돈이 발표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어주오(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가 히트하면서 '노란 리본'은 떠난 사람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의 상징이 됐다.

서양에서는 'She wore a yellow ribbon'이라는 시가 미국 독립전쟁 당시부터 전해져 오고 있는데 '노란 리본을 한 여인이 전쟁터에 나간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917년 발표된 'Yellow ribbon'이란 군가도 있다. 이후 1949년에 상영된 존 포드 감독, 존 웨인 주연의 서부영화 '노란 리본을 단 여인'이란 영화도 있었는데 '노란 리본'이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노란 리본 달기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된 것은 지난 1979년 11월 4일부터 무려 444일간 지속된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이다. 당시 인질의 가족들이 집 앞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 리본 달기 캠페인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우리 사회에 노란 리본 달기가 확산되고 있다. 세월호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리본 달기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카카오톡과 트위터 등의 프로필에 희망의 노란 리본 달기에 동참하세요"하는 글이 퍼지고 있다. 침몰 세월호와 함께 실종된 사람들의 기적같은 귀환을 바라는 전국민의 바람이 모이면서 SNS는 노란 물결이 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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