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남았단 죄책감 갖지 말고 일상에 복귀하라 재촉 않아야"

김은진씨

"열일곱이던 내가 스물일곱이 되어도 나는 어린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중략) 한동안 괜찮았다. 괜찮다가… 작년부터 또 괜찮지 않은 것 같다. 어제도 울었고 그제도 울었고, 그그제도 울었다. 이유 없이 울었다. 오늘은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한 번 울었고 목욕하다가 머리를 감다가 울었다. 내일부턴 괜찮아질 거다. 내일부터 그렇게 내년 7월이 되기 전까진 또 괜찮아진다"(2010년 7월 14일의 일기)

2000년 7월 14일 여고생이었던 김은진(30·여·사진)씨는 당시 수학여행 중이었다.

경북 김천시 봉산면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하행선에서 부산 부일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단을 태운 버스 4대가 승용차 등 차량 5대와 연쇄 추돌했다. 이 사고로 추돌 차량이 전소하고 학생 등 18명이 숨지고 97명이 다쳤다.

당시 버스 안에서 정신을 잃었던 김씨는 친구들이 업고 나와 살 수 있었다. 문이 잠겨 창문을 깨야 탈출할 수 있었던 다른 반 버스에서는 13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온몸이 새카맣게 탄 채 탈출하던 친구들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고, 트라우마로 남았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김씨는 학업차 지금 미국에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세월호 침몰 참사를 접하고 입을 열었다. 23일 연합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다.

그는 "유사한 고통을 오래전에 그들 나이에 겪었고 어쩌면 평생 그들이 견뎌야 할 고통의 무게를 약소하게나마 공유하는 것 같다"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사고가 난 7월만 되면 힘이 든다고 했다.

사고 직후 6개월간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10대였음에도 1∼2년간은 술에 의지해 위 천공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14년이 지나 재현된 참사 앞에서 그는 이번 사고의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들이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될까 봐 걱정했다.

김씨는 우선 심리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고와 피해자를 잊지 않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큰 위로가 된다"며 "가족과 친구, 지인들이 편지를 자주 써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그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양가감정'(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었다. 살아남아 행복했지만 미안했다. 당시 피해를 본 친구들의 부모님과 연락할 때 그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행복해 보이면 그들이 상처받을까 봐 그러지 못했다.

생각보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왔다. 3∼4년이 지나니 안 힘든 때가 왔다. 하지만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사고 후 살아남은 학생들은 자퇴했고 부모들은 이사를 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끝나지는 않았다. 잠시 잊을 수 있었지만 진짜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지 못했고 상처는 계속됐다.

무엇보다 힘이 됐던 건 가족의 지원이었다.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라고 재촉하지 않고 그냥 지켜봐 주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김씨는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잘못한 게 없으니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고 당부했다.

이번 참사를 잊어선 안 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사고를 겪은 안산 단원고에는 추모 행사라도 계속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사고 날짜가 되면 힘들고 슬프겠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마지막까지 책임진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몇 년이 지나도 '우린 너희를 그리워한다. 잊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 이메일은 eunjin.kim.0827@gmail.com입니다.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습니다.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이메일은 계속 확인할 테니 힘이 들 때 꼭 연락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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