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 순천향대 구미병원 교수 칼럼- 농업인 건강·안전 지킬 수 있는 시스템 마련 시급

김진석 순천향대학교 구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일반적으로 산재나 직업병이라고 하면 주로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고, 농민 즉 농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소외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공식적인 통계조차 없지만, 국제노동기구(ILO) 자료에 의하면 농업은 재해율(1.25%)이 전체 산업 평균 재해율(0.9%)보다 높은 재해 산업으로 분류된다.

 

이는 재해율이 가장 높은 업종인 광업이나 건설업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그간 우리나라가 고도의 산업사회로 발전하면서 근로자들의 땀과 희생만이 강조되고, 농촌사회의 안전과 보건은 소홀히 다뤄져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농업인 인구수는 약 310만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7%를 차지하는 단일 직업군으로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한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2006년부터 농업인들의 직업병,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농작업 안전모델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필자 역시 사업 초기부터 경상북도 농작업 안전보건특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참여해 농촌과 농부들의 건강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농작업 안전사업은 건강진단과 설문조사를 통해 농업인의 재해와 질병 관련 통계자료를 수집하고,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농촌 마을과 농업인의 안전 보건 문제점을 파악한다. 나아가 조사 결과에 기초해 환경을 개선하고, 건강관련 시설 및 장비의 설치, 안전보건 교육, 건강증진 사업 등 농민과 농촌마을의 건강과 안전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일들을 2~3년간 수행한 후 다시 사업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한 조사 연구를 했다.

 

연구진 조사결과에 의하면 농민들의 재해율은 근로자들보다 4~7배 높았으며, 농업인의 약 80%가 작업관련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평균 연령이 60세가 넘는 고령인점과 더불어 열악한 노동환경, 건강과 안전에 대한 무관심이 우리 농촌마을과 농민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다행히 시범 마을에서 3년간의 사업이 완료된 후 농민들의 건강 상태를 재평가하니 거의 모든 시범마을에서 건강과 안전 상태가 호전됐다. 특히, 농업인에게 가장 많은 질환인 팔, 다리, 허리 등의 근골격계 통증이 호전됐다. 팔과 손의 근골격계 질환이 절반 이상 감소한 마을도 있었다.

 

사업단이 무엇보다 근골격계 질환 예방 및 치료 프로그램에 집중한 결과였다. 농작업 편의 장비의 보급, 근력강화를 위한 체조, 스트레칭 교실, 물리치료 및 통증치료의 수행이 농업인들의 건강증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안전보건 의식이 향상됐고 농약 살포, 보관, 농기계 안전 분야에서도 행위실천이 증가했다.

 

조사 결과 나타난 안전보건 성과보다 더 의미있는 변화는 사업후 마을에서 새로운 활기가 넘치고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단합하는 농촌마을 특유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농작업 안전 사업의 혜택은 매년 한 두개의 시범마을 농업인 100명에 국한되고 있다. 이 사업은 더 이상 '시범'사업으로 국한돼져서는 안되며, 전국적 사업으로 확산돼야 한다.

 

그리고 제도적으로 농업인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근로자들은 산재보험제도로 인해 일하다가 다치거나 질병에 이환될 경우 치료와 노동 능력 손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제도적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농업인들은 그 자신이 사업주라는 특성으로 인해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게 되면 그로 인한 손실은 오로지 본인들이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과 유사한 농작업재해보험이 반드시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농업인들과 우리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농사지으면 골병든다는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우리 농촌의 미래도 없고, 나아가 우리의 고향, 우리가 돌아갈 곳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못해도, 좋은 공기와 맑은 물 흐르는 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면서 건강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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