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곡선을 그려가며 꾸불꾸불 뻗어 가고 있는 길은 직선적인 기능을 거부한 놀이의 공간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는 고속도로의 직선으로 바뀌어 가면서 사람이 멈추어 설 수도 없고 주저앉아 쉴 수도 없으며 걸어 다닐 수도 없는 불모의 공간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고속도로는 기능주의의 길입니다. 도로 표지판에는 속도 표시와 거리를 나타내는 숫자만이 적혀 있습니다. 오로지 목표만을 향해서 최단거리로 달려가라고 외칩니다. 기능주의 외에는 일체의 다른 목적이 허락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고속도로는 넓은 길이지만 그것은 시골의 오솔길보다도 더 좁은 길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떠도는 자의 우편번호'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길에 대해 쓴 글이다.

경북도가 도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주저앉아 쉴 수 있는' 길의 관광 상품화에 나섰다. '영남 옛길 답사프로그램'을 짜서 이번 달부터 답사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달에는 고령의 예던길, 다음달에는 영주의 소백산 자락길을 답사한다. 올해는 10월까지 도내 5곳의 이야기가 있는 길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6월에는 안동 퇴계 오솔길, 9월 문경새재 과거길, 10월 울진 십이령길을 차례로 답사키로 했다.

퇴계 오솔길은 단천교에서 미천장담과 농암종택을 지나 고산정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이 길은 퇴계가 15세 되던 1515년 숙부를 따라 청량산에 들어가면서 처음 걸었던 길이다. 그 후 청량산을 여러 번 오가며 걸었기 때문에 퇴계 오솔길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고령의 옛길 이름이 '예던길'이지만 퇴계가 걷던 이 길의 이름도 '예던길'로 불린다. 지역 사람들은 '예던길'이라는 말 대신에 '가던', '다니던'의 뜻인 '녀던길'이라 부른다. 녀던길이라는 표현은 퇴계의 도산십이곡 중 제9곡과 제10곡에도 나온다. 이렇게 보면 퇴계 오솔길은 진리를 찾아 가는 길이다.

십이령길은 동해 바닷가 마을인 '흥부(울진군 북면 구정리)장터'에서 하당(당거리)마을을 지나 말래(두천 斗川)마을을 거쳐 크고 작은 12고개를 넘어 영남 내륙인 봉화 소천으로 이어지는 '미역과 소금의 길'이다. 역사와 이야기가 서려 있는 영남 옛길을 걷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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