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도 파우스트도 없도록 사회악 송두리째 뽑아내는 국가 개조 차원의 혁신 필요

제갈태일 편집위원

세월호의 후유증으로 온 나라가 패닉(Panic)상태다. 어른들의 부주의로 수백 명의 아이들이 수중고혼이 되었으니 면목이 없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은 성숙성에 있다. 노련한 경험에서 비롯되는 예측력과 정확한 판단력이다. 아이들이 어른을 따르는 이유다. 그러나 세월호의 선원들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의 어린이 오스카가 생각난다. 광기어린 나치즘과 위선자들인 어른이 싫어서 난쟁이가 되었다. 자신의 성장을 멈추기 위해 스스로 지하실 계단에 몸을 던졌다. 오스카는 엄지 손가락만한 3살배기 아이로 살기를 원했다. 그는 세상이 깨어지도록 북을 치고 비명을 질렀다. 어른들에 대한 선전포고다.

과대망상에 황폐해진 정치판과 파괴적 영웅 심리로부터 해방선언이며 더러운 어른들의 욕망이 빚어낸 난장판으로부터 탈출선언이다. 양철북을 두드리면서 어른들의 허구성과 야만성을 고발했다. 그로테스크한 난쟁이가 보는 뒤집혀진 가치관과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온전한 영혼을 보존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 아웃사이더다.

우리사회의 어른들은 어떤가? 침몰된 배를 두고 선장이 먼저 도망가고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는 갈팡질팡했다. 사회의 목탁이란 언론은 오보를 남발했고 정신 나간 정치인은 가짜 희생자 가족행세를 했다. 사고선박의 실제선주는 300억 원이 넘는 불법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고 감독기관은 낙하산 관료들로 득실거린다. 유관기관의 부실경영과 부패는 예고된 참사였다. 세월호와 함께 '국가위상'도 함께 침몰했다.

이런 와중에도 핵실험 운운하는 북한의 망동은 초상집에 축포를 쏘겠다는 심보다. 차갑고 캄캄한 해저에서 꽃 같은 삶을 마감한 아이들도 양철북을 치고 싶지 않았을까? 아직 시신마저 수습되지 않은 어린 영혼이 있다면 양철 북이 아니라 신의 뒤통수라도 치고 싶을 것이다.

사악한 어른의 대표적인 위선자를 꼽는다면 전설 속의 파우스트가 아닐까한다. 천문지리와 우주물리까지 꿰뚫고 있었던 해박한 파우스트는 지식을 악용하고 마법으로 악마를 불러낸다.

24년 간 악마의 도움으로 온갖 지상의 탐욕과 쾌락을 즐긴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끝없는 타락과 악행을 저질렀다.

약속시간이 되어 굉음과 함께 영혼과 육체는 지옥에 떨어져 영겁의 벌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의 마지막 독백은 "인간은 신을 닮은 것이 아니라 쓰레기통에서 꿈틀 거리는 벌레와 닮았다"는 것이다.

파우스트가 연옥의 불길 속으로 떨어졌듯이 사고 관련자들도 작심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 어른노릇을 제대로 못한 어른들은 파우스트의 뒤를 따라야 마땅하다. 아이들도 하늘의 별이 되어 지켜볼 것이다.

이 땅에서 인재(人災)라는 말은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 북을 치는 오스카도 파멸하는 파우스트도 없도록 모든 사회악을 송두리째 뽑아야 한다. 정부도 명운을 걸고 국가개조 차원의 혁신을 촉구하는 바다.

노란 리본이 측은지심을 흔들고 촛불은 밤을 밝히고 있다. 그 와중에도 살신성인으로 학생들을 구한 의인도 있었다. 아이보다 못한 어른들이 어물전 망신을 시키고 있다. 그들에게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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