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슬픔에 빠트린 '세월호', 더 이상 미뤄선 안될 과제로 지금 격탁양청이 필요하다

김찬곤 경북과학대학 교수

보통은 새해 초에 각 기관·단체들이 새해 각오나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낱말을 선정하여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곤 한다. 그런데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2월 26일에 이르러 올해의 사자성어를 '격탁양청(激濁揚淸)'으로 선정하였다고 발표하면서 윤리경영 목표로 삼겠다고 하였다. 사자성어 발표는 새해 직전 연말이나 새해 초에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조금 늦어진 것은 일반 기업처럼 매일 업무회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회원사들끼리의 충분한 의견교환 절차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었듯이 지난해 연말 교수신문은 2014년의 사자성어로 '전미개오(轉迷開悟)'를 뽑았는데, 그 때 2위로 꼽힌 것이 바로 '격탁양청'이었다. 이는 "격렬하게 부딪쳐 흙탕물을 흘려버리고, 맑은 물을 끌어올린다"는 의미로 자율적인 윤리경영을 정착시키기 위해 전국의 경제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다. 최근의 경영활동에서 강조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엄수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리경영임원협의회를 통해 회원사 간의 윤리경영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윤리경영을 위한 '자율진단표'를 실용적으로 정비하겠다는 입장도 밝힘으로써, 이제는 단순히 '올바른 영리활동 범위 내'에서의 경영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범위 내'에서의 경영을 천명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사회를 급격한 혼란과 슬픔에 빠트린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격탁양청이 이제는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매우 절실한 과제로 떠올랐다. 해운조합이나 소속 관료들의 유착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세월호 선사의 실제 소유주의 불법·탈법 행위가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으며, 승객의 안전이나 권리에는 아무런 대책도 구비하지 못했으면서 국내의 여객선 중에는 가장 큰 규모임에도 선장은 1년 계약직이라는 사실 등이 그 사례다.

일본의 18년 된 선박을 들여와 더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 안전은 무시한 채 확장한 것이라든지, 적정 무게는 고려하지 않은 채 요구받은 컨테이너 화물은 무작정 싣고 본다든지, 사고 선박 직원들의 안전교육을 위해서는 1년에 고작 54만원을 쓰면서 접대비는 수 천 만원 썼다든지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많은 어린 학생들이 기업주가 무시한 사회적 책임으로 이미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악성 댓글이나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다든지,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의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희생자 가족들은 그 충격으로 평상심으로 과거처럼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가 된 지경도 그런 범주다. 또 어떤 위로나 보상도 희생자가족의 아픔을 결코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도 그렇다. 이는 비단 해운업계의 뿌리 깊은 불합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덕목에 대한 경시풍조가 너무 깊이 박혀 있다는 점도 그렇고, 수습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우리사회에서 그동안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혼란과 혼선을 치유할 가치기준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또한 마찬가지다.

차제에 사람을 중심으로 한 총체적 반성과 대대적 점검이 절실해 보인다. 격탁양청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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