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50대 통과·200만명 이용…자칫 대형 사고 날 뻔

지난 2일 오후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는 신호기 이상으로 열차 자동정지 장치(ATS)가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특히 지난달 29일 해당 신호기 작업 후 줄곧 신호기 오류가 있었고, 오류는 사고가 나고서야 확인됐다.

나흘간 하루 평균 550대의 열차가 눈을 감고 달린 셈이다.

◇신호기 작업 후 나흘간 '깜깜'

서울시는 3일 브리핑에서 추돌 사고 원인과 관련 "지난달 29일 오전 3시 10분께 을지로입구역(내선) 선로전환기 속도 조건을 바꾸기 위해 연동장치의 데이터 변경 작업을 했는데 이때부터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작업은 충정로역에서 상왕십리역 구간을 지나는 열차의 속도제한을 시속 25㎞에서 45㎞로 높이기 위한 것으로, 속도를 조정해달라는 기관사들의 의견을 반영해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사고가 발생한 2일 오후 3시 30분까지 나흘간이나 신호기 오류가 계속됐지만 서울메트로는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장정우 서울메트로 사장은 "개조 이후에는 열차끼리 근접한 상황이 없어서 기관사나 관제센터에서는 인지가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서울 지하철 가운데 2호선은 승객 수가 가장 많은 노선이다. 하루 550대의 열차가 지나고 시민 약 200만명이 매일 이 열차를 이용했다.

위험에 노출된 시간을 고려하면 더 큰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지난달 17일부터 30일까지 지하철을 포함해 주요 시설물에 대한 일제 안전점검이 이뤄졌지만 신호기는 특별점검이 아닌 일상점검 대상이라 일제 안전점검에 포함되지 않았다.

◇신호기 '빨간색' 대신 '초록색불' 표시…기관사가 수동 제동

사고 당시 열차에 운행 여부를 알리는 신호기 3개는 후속 열차에서 봤을 때 '진행(초록)·진행(초록)·정지(빨강)' 순이었다. 정상 상태라면 '주의(노랑)·정지(빨강)·정지(빨강)' 순으로 표시돼야 맞다.

후속열차의 기관사는 신호기의 표시대로 왕십리역사 방향으로 진행을 계속했고, 상왕십리역 홈에 진입하기 직전에 들어온 빨간 불을 보고서야 급히 수동으로 제동을 걸었다.

시속 68㎞로 달리던 열차는 제동 후에도 128m를 더 가서야 멈췄다. 충돌 당시 후속열차의 속도는 시속 15㎞였다.

신호기는 도로의 신호등처럼 초록(진행)·노랑(주의)·빨강(정지) 등의 색 구분을 통해 열차에 운행 여부를 알린다.

초록은 승무원에게 시속 80㎞까지 속도를 내도 좋다는 뜻이고, 노랑은 역사에 들어갈 것을 준비하고 시속 45㎞ 이하로 속도를 줄이라는 표시다.

각 상황마다 기관사가 제동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속도가 통제된다.

이런 신호기를 포함해 선로 밑바닥에 설치된 '지상자', 차량 안에 설비된 '차상자'를 통칭해 열차 자동정지 장치(ATS)라 한다.

신호기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ATS가 작동돼 열차에 제동이 걸리지만 신호기가 파란 불로 잘못 표시돼 ATS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문가들 "황당하다"…관제소 역할 의문

전문가들은 사고 초기부터 사고 원인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규정상 ATS가 고장 나면 열차는 운행을 중단하고 회송하기 때문에 승객들을 태우고 운행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나흘 간이나 신호기 오류를 몰랐다는 사실에 대해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며 "일어나서도 안되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2호선이 개통된 1980년부터 2호선 열차를 운행한 35년 경력의 전직 기관사 서모(70)씨는 "신호기 고장은 일어난 적도, 생각해 본적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는 어느 기관사라도 사고를 피할 방법이 없다"며 "기관사 한 명의 잘못이 아니라 신호가 잘못됐다면 설비 전체를 다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큰 일"이라고 말했다.

AT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노선 내 각 열차의 위치를 확인해 운행을 통제할 수 있는 종합관제소의 역할에 의문이 남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철도 전문가는 "설사 시스템이 망가졌더라도 기계적인 오류에 대비해 사람이 각 열차의 위치를 확인하고 통제하는 곳이 종합관제소"라며 "관제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것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씨도 "종합관제실에서 내선·외선의 구간을 나눠서 열차 간격을 다 확인할 수 있다"며 "관제실에서 왜 후속열차가 가까이 따라가도록 뒀는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신호기가 파란 불이어서 ATS가 작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관제소에서 즉각 알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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