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태종시절 태자가 관례를 치러야 했다. 담당 신하가 2월의 길일을 택해 행사를 하겠다며 병사를 더 차출, 의전을 준비 해 달라 왕에게 요청했다. 태종은 "2월이야말로 봄 농사가 시작돼 바쁘기 그지없으니 10월로 바꾸도록 하라"고 했다. "음양의 역서에 의하면 10월은 2월의 길일만 못합니다." 신하가 2월을 고집하자 태종이 말했다. "길흉의 사정은 오로지 사람에게 달려 있다. 만약에 일을 하는데 음양에 의거해야 한다면 예의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길함을 얻을 수 있는가? 정도를 쫓아서 시행하면 스스로 길한 것과 만나게 된다. 농사짓는 시기가 가장 급한 것이니 이를 어길 수 없다." 당태종은 '백성에게 이로우면 길한 것이고, 백성에게 해로우면 흉한 것이다'라는 신념이 확고했다. 이처럼 당태종의 애민정치는 철저했다. 농민봉기로 무너진 수나라의 말로를 지켜본 이세민 당태종은 피플파워의 거대한 힘을 깊이 인식, 애민(愛民)을 통치기반으로 삼았다.

당나라 수도 장안 근교에 메뚜기 떼가 급습, 농작물에 큰 해를 입혔다. 태종이 궁전 안의 뜰을 거닐다 메뚜기를 보고 손수 두 손으로 몇 마리를 잡았다. "백성은 양식으로 생명을 보존하는데 너희들이 도리어 백성의 양식을 먹고 있다니…. 백성들에게 허물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나 한 사람의 책임이다. 너희들에게도 만약 열성이 있다면 당연히 나의 심장을 먹어야지 백성들에게는 해를 입히지 말라"면서 태종은 메뚜기를 입 속으로 삼키려했다. "폐하, 메뚜기를 드시면 병환이 염려되오니 드시지 마십시오."신하들이 말렸다. "내가 바라는 것은 백성들의 재앙을 나 자신의 몸으로 옮기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질병이 두렵겠나." 태종은 메뚜기를 삼켰다. 그 일이 있고나서 태종의 애민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메뚜기에 의한 재앙이 사라졌다. 통치자의 국민사랑을 감동적으로 보여준 본보기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석상의 대국민사과가 실종자 가족과 국민들로부터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의 분노를 달래려면 국무위원 앞이 아닌 실종자 가족이나 국민 앞에서 사과하는 것이 예이다. 백성을 향해 몸과 마음을 던진 당태종의 '감동정치'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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