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찬장에는
연지 지우며 동개놓은
그녀의 첫 그릇들 가지런합니다
단 한 번 오목한 미소도 훈기도 담아내지 못한
유리 화채 그릇이며
꽃 지는 노을 속 아직도
자국눈 내리는 저녁 속 아직도
첫 손님 기다립니다
평생을 그렇게 기다리며
견딥니다
<감상> 오래 전, 그것도 아주 오래 전. 의미를 담뿍 담은 그릇이 세월만 잔뜩 담고 있는 풍경이 눈앞에 머무른다. 세상을 살다보면 너무 귀하기에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것들이 어디 한두 갠가. 소중하기에 정성껏 보관하다 보니 그 낡음은 고태미를 지니기까지 한다. 세월의 흐름에 또 새로운 그릇이 그와 같이 찬장을 채울 것이다. 그것이 집안에 무늬 새겨지는 것이 가족사 아닐까. (허재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