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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균씨 일상에 대한 감사, ‘100감사쓰기’ 최우수

경북일보 주최…“살아 숨쉰다는 것에 대한 감사·행복 깨달았어요”

박혜균(영덕군 축산면 축산로) 등록일 2014년05월22일 21시52분  

1. 제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합니다.

저는 제 삶에 시간이란 무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 일을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간이란 영원히 제 옆에서 많은 기회를 줄 것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말기 신부전을 앓게 되면서, 언제 어느 때든 심장마비나 저혈압, 고칼륨혈증으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 아니, 현재의 시간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작은 시간도 유용하게 사용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죠.

2. 배려의 마음을 갖게 되어 감사합니다.

대표적으로 저는 대중교통의 경로석이나, 주차장의 장애인 주차구역이 과연 필요한가하는 생각까지 하며 살았던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입장을 그리 배려하지 않고, 저만의 슬픔이나 기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각자가 처한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런데 제가 아프고 보니,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슬픔, 불편함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저는 눈에 보이는 상대방의 근황을 배려하는 법을 서서히 터득할 수 있게 되어 남아있는 저의 시간을 '사려깊은 사람'으로 기억될 기회를 얻게 된 셈입니다.

3. 경청의 즐거움을 알게 된 감사함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에 웅변대회에 많이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했던 일도 강사였기에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었죠.

그래서였는지 어떤 모임이나 장소에서도 제가 말을 많이 해야만 직성이 풀릴 정도로 제 말을 많이 했습니다. 가끔은 '왜 말을 자르고 들어오느냐?'는 핀잔을 들을때도 있을 만큼, 말이 많이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은 것이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경청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어요.

그 덕분인지 요즘 저희 집 전화는 좀 바쁩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이 저로 하여 힐링을 할 수 있다면서 좋아할 정도로, 상대의 말을 잘 듣거든요. 아프다고 하면 그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들다고 하면 그 힘든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줍니다. 사람들은 그런 제가 참 편하고 좋대요.

만약 제가 아프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제 얘기만 상대에게 재잘거리고 있었겠지요. 그러면서 사람들로부터 '무조건 나서고 본다'는 핀잔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4. 책읽기를 즐기게 되어 감사합니다.

몸이 건강할때는 영화나 연극 관람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아프니 움직임이 힘들어지죠.

덕분에 저는 그토록 싫어하던 책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이틀에 한 권의 책은 무조건 읽습니다. 분야를 망라하고 열심히 책을 읽은 덕분에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갖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줄 수도 있고, 도움도 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또한 책 읽기 덕분에 병원에 갈 때마다 지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이템을 갖게 된것도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책 읽기의 즐거움, 상상 그 이상이예요.

5. 자연식을 하게 된 감사함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랬기에 은근히 '햄버거나 피자'를 먹는 사람들이 도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제 힘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면서 이런 식품을 많이 먹었습니다. 제 스스로 '도시인'이라는 같잖은 자부심까지 가지면서요.

시골의 토속적인 음식들은 '미개한 음식, 없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폄하도 했죠. 아프고 보니 자연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어, 저는 지금 철저한 자연식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식은 환경도 살리고 내 몸도 살리고, 가족의 건강도 챙겨주는 효자 식품임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죠.

제가 아프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엄마가 보내주시는 된장이나 간장보다는 햄이나 통조림을 더 많이 밥상에 올렸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저 뿐만 아니라 남편과 딸도 지금의 건강을 지키고 있을 수 없었을 거예요.

제가 자연식의 고마움을 알게 해 준 제 병에 진정 감사를 보냅니다.

6. 일회용품 사용을 거의 하지 않게 되어 환경 보호와 자원 절약에 일조하게 해 준 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도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저는 일회용품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종이컵에 일회용 커피를 마시면 세련되어 보였고, 도시락을 쌀 때도 일회용을 챙기면서 나름대로는 '세련된 도시인'이라는 겉멋도 부렸으니까요.

제 병은 환경오염이 가져온 질병이었습니다. 일회용품 사용은 환경오염의 최대 주범이죠. 그랬으니 저는, 제가 사용했던 일회용품만큼의 벌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벌을 상쇄하는 방안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하지 않기로 했죠. 아픈 것은 저 하나로 족하니까요. 다른 사람들이라도 건강하게 지내려면, 그리고 제 뒤를 살아야 할 후대의 사람들이 건강하려면 저부터라도 일회용품 사용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금도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제 자신에게 뿌듯한 상을 주고 싶어요.

7. 순수한 물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게 된 감사함입니다.

제 병이 깊어지면서 저희는 고향으로 귀촌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어린 시절에 먹던 맑은 물을 공급받습니다. 영덕 오십천의 맑은 물은 수도배관을 타고 저희집까지 옵니다.

물 맛이 정말 좋습니다. 도시의 물처럼 정수를 해야 하는 단계가 없는 순수한 물의 맛. 염소 냄새가 없는 이 물이 제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는 것이죠.

어린 시절에 저는 엉뚱한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어 도시로 진출하여 염소냄새가 남아있는 그 물을 접해보는 거였죠. 그 물을 마시면 저도 도시 사람들처럼 세련되게 변할거라는 착각까지 하면서요.

하지만 그 물은 제게 좋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제게 맞는 물은 가공하지 않는 순수한 물, 고향의 물맛이었죠. 바로 母胎鄕水의 물이 지금의 저를 지켜주고 있어, 저는 순수한 물에 대하여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도꼭지를 열고 있습니다.

8. 제가 시골태생이라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도시의 삶은 제게 '추억'을 주지 못했습니다. 반면 열아홉살까지 살았던 시골의 삶은 지금까지도 제게는 모든 것이 추억이 되어 줍니다.

하얀 찔레꽃에서부터 코를 간질이는 아카시아의 향기, 가을이면 하천을 뒤덮던 하늘하늘한 코스모스까지도 제게는 추억의 대상입니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또 다른 생각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에 저는 시골태생인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에 어쩌다 대구로 가면 사람들은 제게 '촌 사람'이라고 했고, 저는 그 말이 너무 너무 듣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는 사람들이 제게 '촌 사람'이라고 하면, 아주 여유있게 얘기를 해 줄 수 있습니다. '촌 사람이 누리는 추억의 행복함'에 대해서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얘깃거리가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사는 일은 너무도 행복합니다.

9.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귀촌을 하면서 저는 조그마한 텃밭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어촌에서 태어나 자란 남편은 농사를 모릅니다. 덕분에 텃밭은 온전히 제 소유가 되었고, 저의 주관에 따라 이용합니다. 만약 제가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다면 참으로 힘들었겠지요.

다행히 저는 어린 시절에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어서 이 텃밭을 익숙한 솜씨로 경작하여 저희 가족이 여름부터 가을까지 먹고 남을 정도로 수확합니다. 작은 것이간 하지만, 제게는 소중하고 감사한 능력입니다.

10. 저는 막내며느리예요.

위로는 두 형님이 계셔서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그래서 별 위세도 없습니다. 예전에는 그것이 좀 불만이었어요. 제 의견은 없고 무조건 따라하기만 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막내 며느리라는 자리가 아프고 나니 참 편합니다. 형님들께서 하시는 대로 따라하기만 해도 되니까요.

또한 '맏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에서 조금 벗어나 제 몸을 다독거릴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제가 맏며느리였다면, '몸이 좋지 않아 제대로 며느리 노릇을 못한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막내 며느리라는 자리는 제 투병에 이런 마음의 짐을 덜어주며 편함을 줍니다.

11. 제가 갖고 있었던 직업이었습니다.

제 병을 알 당시에 저의 직업은 출퇴근이 어느 정도는 자유로운 곳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진료를 위해 별 불편함없이 병원 출입을 할 수 있었고, 직장에 큰 불편을 끼치지 않고도 계속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제 병을 아는 순간에 직업을 그만두어야 했겠지요. 출퇴근에 탄력성이 있었던 직업을 갖게 된 덕분에 남들과 다름없이 쭉 직장생활을 하여 가계에 보탬도 되고, 제가 살아있다는 만족감으로 투병이 힘들지만은 않았기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2. 제가 다녔던 직장의 동료들이 보여준 이해심에 감사합니다.

아프고 나서 식이요법을 한다, 과로하면 안 된다는 저의 말에 수긍을 해주고 배려를 해주어 별 탈 없이 동료로 지낼 수 있게 해 준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처음에 말기 신부전 진단을 받고 나서 ‘혹,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면 어떡하나?’하는 걱정도 많이 했는데,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 준 동료들이 있어서 더 즐겁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직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너무도 감사한 분들이고, 지금도 연락하며 만나면 제가 이 정도의 건강이나마 유지하는 것을 함께 기뻐해줍니다. 제게는 사회로 연결되는 가장 튼튼한 동아줄인 전 직장의 동료들에게 늘 감사합니다.

13. 면역력을 갖게 된 감사함입니다.

저는 어릴 때의 부족한 영양으로 인해 면역력이 좀 약한 편이었습니다. 덕분에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생활 습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은 이런 저의 습관이 힘이 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저는 제 생활패턴대로 살 것을 은근히 강요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말기 신부전이 되면서 면역력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편하게, 조금은 느슨하게 사는 법을 알게 되면서 면역력도 높아졌어요. 그래서 감기도 잘 걸리지 않게 되었고, 몸의 저항력이 높아진 덕분에 소소한 피부질환도 없어져서 편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14. 병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 다른 큰 질병을 미리 예방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저는 단순한 감기로 주사를 맞는 일도 많이 두려워했습니다. 그 통에 병원을 제때 가지 않아 이틀 앓을 감기를 열흘씩 앓기도 했죠. 한 마디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며 산 셈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맞는 조혈주사도 아주 씩씩하게 잘 맞아요. 병원에 가는 스트레스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병원에 가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치는 더 나빠져요. 그런데 그 스트레스가 없으니 병원가는 일도 괜찮고, 가끔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듯한 느낌도 드니까 수치가 들쑥날쑥을 하지 않아요.

옛말에도 있잖아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요. 이제와서 제 병을 어찌할 수는 없으니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거죠. 병원을 친구처럼 생각하니까 다른 큰 질병은 미연에 방지됩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15. 소통이 잘 되는 담당 선생님을 만난 행운입니다.

진료를 받아보면 담당 선생님과 소통이 잘 되지 않아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진료하는 선생님께서는 환자의 말을 잘 경청해 주십니다. 저를 아는 이들은 ‘지방의 작은 종합병원의 의사보다는 대형 병원의 의사가 낫지 않나?’라고 제게 병원을 옮겨보라고 말합니다. 대구나 서울의 대학병원에 가면 더 낫다는 거죠.

하지만 제가 투병생활을 해보니, 큰 병원보다는 환자의 상태를 세밀히 파악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의사 선생님이 더 많이 보탬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저를 진료해주시는 선생님은 저의 투병에 정말 도움이 되는, 소통이 잘 되는 분이십니다. 이런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16. 풍성한 저의 머리숱이 참 감사합니다.

질병을 앓게 되면 가장 먼저 표시가 나는 것이 머리숱의 변화입니다. 머리카락이 약해지거나 탈모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죠. 저는 아프기전에는 저의 풍성한 머리숱이 불만이었습니다. 머리 손질을 위해 미용실에 가면, 미용사들이 좀 싫어했어요. 머리숱이 너무 많다고요. 저도 머리를 감을 때마다 숱이 많아서 불편했기에 ‘머리숱이 좀 줄어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죠.

그랬는데, 지금은 그 많은 머리숱이 정말 감사합니다. 어지간한 탈모에도 끄떡없이 제 머리를 보호해주거든요. 저와 같은 질병을 앓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텅 빈 머리카락’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숱 많은 머리카락은 정말 감사한 축복이지요.

17. 튼튼한 혈관에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왜소한 몸을 갖고 있습니다. 팔도 가늘어서 혈관도 약할거라 생각될 정도인데, 의외로 혈관이 참 튼튼해요. 그래서 주사를 맞거나 채혈을 할 때도 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 혈관이 저의 체격처럼 왜소했다면, 저는 채혈을 하거나 주사를 맞을 때마다 고통스러워해야 했을 거예요.

혈관이 튼튼하다는 것, 장기적으로 만성질환을 앓는 저에게는 ‘건강한 투병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도우미’입니다.

18. 미리 발견할 수 있어 대비했던 심장비대증 치료에 감사합니다.

혈액 투석을 위해 동정맥루 수술을 하고 나서부터 저는 극심한 호흡곤란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얕은 오르막만 올라도 헉헉거려야 할 정도로 심장이 힘들어했지만, 심장이 비대해져서 그렇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냥 신부전이어서 그런거니 하고 방치했는데, 담당 선생님의 관심으로 심장비대증을 미리 발견하고 조치를 할 수 있어서 지금껏 살아있습니다.

만약 제때 발견·조치를 않았다면, 저는 아마 심장마비로 급사를 당할 수도 있었을텐데 절호의 시기에 발견하여 치료를 한 덕분에 지금은 더 이상 심장이 비대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천만다행이고, 제 남은 삶에는 가장 감사한 일입니다.

19. 흙의 소중함을 알게 된 감사함입니다.

흙을 밟고 살던 유년 시절에는 잔병치레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도시인이 되고 부터는 흙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회색의 도시에서 흙은 ‘더럽고 귀찮은 존재’로 제게 각인이 될 정도라, 피하며 살았고 결국 저는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병을 얻고 나서야 자는 흙이 주는 자연치유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마당 전체가 흙이고, 텃밭의 흙도 제게는 좋은 치유제가 됩니다. 제가 떠나고 싶었던 시골의 흙을 다시 사랑하게 되어,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받고 있으니 흙은 제게 정말 고마운 존재입니다.

20. 꽃이 주는 아름다운 일상의 소중함을 매일 느끼는 감사함입니다.

처음에 도시로 나가서 가장 생소했던 것이 ‘꽃집’이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지천에 핀 것이 꽃이었는데, 도시에서는 그 꽃을 돈을 주고 사더라고요. 저는 꽃이 돈을 주고 사야 할 만큼 귀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꽃이란 원래 피는 것이고, 흔한 거라는 생각 때문에 꽃값을 치르는 사람들이 미련스러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많지 않았죠.

지금은 다릅니다. 작은 채송화 한 송이에도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었고, 꽃이 제공하는 아름다움 향기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집 주변을 뒤덮은 아카시아 향이 참 좋습니다. 그 향기를 맡을때마다 제가 행복한 사람임을 새삼 깨달으며, 꽃이 주는 아름다운 일상에 감사를 전합니다.

저의 삶을 연극으로 만든다면 두 번으로 막을 올리면 됩니다. 두 번째 막의 시작은 제가 말기신부전 진단을 받던 때부터이죠. 그전까지 저의 삶은 그냥 남들처럼 평범했습니다.

딸 많은 집의 넷째딸로 가난을 머리에 이고 태어났고, 그 가난함을 이겨내고자 열심히 공부했고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막내 아들인 남편과 결혼을 했고, 둘이서 열심히 벌고 아끼며 가정을 꾸려나왔습니다. 그랬으니 저의 삶은 어찌보면 투쟁이었고, 어찌보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는 숙명을 안고 살아야했던 셈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 불행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을 넓혀가고, 좋은 가전제품을 장만하고, 다른 사람들과 웃으며 볼 일도 많았고, 명절이면 모일 가족도 있었으니까요.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래도 불행했던 날보다는 행복한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행복의 밑바탕에는 가족이 건강했고 저도 건강한 덕분이었음에도, 저는 그런 건강함에 대한 감사를 몰랐습니다. 아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자체에 대한 감사도 없었습니다. 때로는 '나는 왜 이리 힘들게 생활을 꾸려야 하나?'하는 투정을 할 때가 많았죠. 제게 주어진 각종 혜택들, 제가 누렸던 건강한 일상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가 10년 전, 말기신부전이라는 말과 '투석' '이식'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동안 제 몸은 극심한 피로와 다양한 증세로 제 병에 대한 조짐을 전달했지만, 저는 그 조짐을 알아채지도 못했습니다. 아니, 제가 아플거라는 것을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온 날들이었습니다. 그만큼 제게 주어진 건강함이 당연한 거라 생각한 거죠.

그 날 이후로 제 삶은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가장 큰 것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행복'을 알게 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오늘 말기신부전 이후로 제가 갖게 된 감사함의 목록을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박혜균 영덕군 축산면 축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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