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코트디부아르는 참혹한 내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축구 대표팀이 코트디부아르 사상 기적적으로 첫 월드컵 진출이 확정됐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거머쥔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자축연을 벌였다. 그때 대표팀 주장 디디에 드로그바는 TV생중계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월드컵 지역예선전에서 9골을 넣는 등 눈부신 활약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견인한 드로그바는 외쳤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적어도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 그러자 정말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드로그바의 호소 이후 일주일 동안 총성이 멈추고 휴전에 들어갔다. 축구가 잠시나마 전쟁을 멈추게 한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코트디부아르 옛 수도 아비장에서 태어난 세계적 골잡이 드로그바는 다섯 살 때 삼촌이 축구선수로 있는 프랑스로 보내졌다. 부모들은 아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타국으로 보냈던 것이다. 드로그바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향수를 이겨내기 위해 축구에 빠졌다. 프랑스 프로리그서 뛰다가 2004년 꿈에 그리던 영국 프리미어리그로 진출, 첼시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렸다. 코트디부아르 국민의 드로그바에 대한 사랑은 거의 광적이다. 그가 아비장공항에 내릴 때마다 공항은 언론 취재진과 환영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리고 TV 9시뉴스 헤드라인은 드로그바에 대한 뉴스다. 일간지 1면도 그의 동정을 싣기에 바쁘다. 우리나라 수원에 박지성거리가 있는 것처럼 아비장에도 드로그바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이 때문에 코트디부아르 국민의 드로그바에 대한 사랑은 한국 국민의 박지성에 대한 사랑과 곧잘 비교된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이 25년간의 화려한 축구 인생을 마무리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4강 신화의 주역 '산소탱크' 박지성은 한국인 프리미어리그 1호로 한국인의 자부심을 높여 한국 축구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독보적인 아이콘으로 '한국판 드로그바'였다. 박지성은 축구에서 뿐만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모범적인 자기관리의 표본이었다. 김민지 전 아나운서와 영원히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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