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청문회 절차 탓인가, 인재다운 인재가 없는 것인가, 국가개조는 사람이 바뀌어야

김일광 동화작가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과거로부터 이어온 잘못된 행태들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틀을 다시 잡을 것' 이라며 모든 것을 원점에서 국가를 개조한다는 자세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지시했다. 5월 19일 담화에서는 눈물까지 흘리며 국가 개조 구상을 밝혔다. 국가 개조라는 말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인물이 춘원 이광수와 반계 유형원이다. 춘원은 1922년 월간 '개벽' 5월호에 민족개조론이라는 장문의 글을 실으며 개조해야 할 10가지 민족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과 우리 민족에 대한 지나친 비하 표현으로 논란의 소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반계는 국가 개조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주자학이라는 엄격한 굴레 속에서 필생의 과업으로 국가 개조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였다.

당파의 북인계열이었던 아버지 유흠이 인조반정으로 억울하게 장살된 이후, 벼슬자리를 단념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그는 당파싸움으로 서로 죽이고 죽는 인간성 상실의 조선사회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 정쟁의 제물이 된 아비의 삶에서 국가와 백성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보게 된다. 그는 절대로 비정한 정치판에는 말려들지 않으리라는 결심으로 책 1만권을 사들고 낙향하였다. 백성들 속에서 그들과 밭 갈고 소를 치며, 흉년과 기아를 함께 넘기면서 진정으로 백성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세상 경영을 구상하였다. 유형원에게 정계에 진출해서 집안의 원한을 갚아주기를 강권하던 조부의 한마저도 뿌리치며 철저하게 권력으로부터 벗어나서 무엇이 백성을 행복하게 하는가. 국가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라는 현실문제의 해결방안에 도전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저술이 반계수록이다.

그는 책의 발문에서 '벼슬하는 양반들은 과거를 통해 출세를 하고는 자기에게 유리한 악습으로 군림하며, 벼슬을 하지 않은 양반들은 독선주의의 도덕을 운운하면서 국가사회에 대한 고려는 외면한다. 그래서 결국 정치는 날로 어지러워지고 백성의 생활은 날로 도탄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반계가 지적한 17세기 공직자들의 모습이 오늘날과 너무나 흡사함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또 공직자들을 질타하면서 '우리나라는 무턱대고 문벌만을 숭상하여 풍속이 구차하게 되었다. 오직 가문이 화려한가를 논할 뿐, 행실을 바르게 닦았는지의 여부는 묻지 않는다. 만약 벌열의 자손이라면 비록 용렬하고 비루한 자라도 정승 판서에 오르고 집안이 한미하면 덕이 높고 학문이 깊어도 사류에 끼지 못한다. 세상을 다스리는 올바른 도리가 서지 않고 인재가 흥하지 않으며 정치와 형벌이 문란한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라고 탄식했다.

청문회 통과 절차가 나무나 까다로운 것인가. 인재다운 인재가 없는 것인가. 그동안 함량 미달인 이들이 나라의 요직을 독식하고는 어른 행세를 하지는 않았는지, 그들을 따라 배우다 보니 인재의 모습이 그렇게 비틀어진 것은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반계가 말한 그저 문벌만 숭상한 것처럼 'SKY' 출신이니, '고소영' 이니, '관피아' 니 하며 행실을 바르게 닦았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 자기 사람만 챙긴 결과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만 같아서 씁쓸하다.

국가 개조를 책임질 현 정부 2기 내각이 기대된다. 국가 개조의 시작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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