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 들어선 중년 사내는 검정 사인펜을 들고 오엠알 카드 같은 로또번호 카드에 줄을 긋기 시작했다. 그저 평상시에 좋아하는 번호나 출근길에 보았던 한 숙녀의 가슴팍에 적혀 있었던 번호를 기억해 그어 넣었다. 여섯 개의 번호 조합이 마무리 되자 번호를 찍어 주는 기계에 넣어 번호표를 쭉 뽑은 후 카운터에 돈을 지불하고 나왔다. 번호표를 지갑에 고이 간직하고 주말이 되기를 기다리지만 번번이 그 사내의 번호는 당첨번호를 피해간다.

이번 선거는 로또보다 더 확률이 낮을지도 모른다. 또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른 형편없는 결과를 불러올지 모른다. 로또번호는 6개만 맞히면 되지만 이번에는 7개의 번호에 도장을 꾹꾹 눌러 맞춰야 한다. 한 번도 로또 번호를 제대로 맞춰보지 못한 사내로서는 7개의 옳은 번호를 다 맞춘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투표용지를 받아 몇몇 이름 외에는 전혀 이름도 생소한 사람들에게 사람인자가 새겨진 빨간 도장을 눌러 찍어야 한다. 앞면에는 사진과 번호, 뒷면에는 시시콜콜한 약력이 빼곡히 적힌 명함을 길거리에서 받아들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눈여겨보지 않았던 그 이름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작은 집단에서조차 모든 일을 전원이 매번 표결을 통해 처리하기란 쉽지 않다. 복잡한 이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간 동질성이 있어야 하고 구성원들이 보편적 가치 우위의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번 선거전은 세월호 사건 영향으로 조용한 선거전이었다. 구성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유권자 무관심이 걱정이었다. 위안이라면 사전투표제에서 기대 이상의 두자릿수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우리 마을의 대표, 우리 지역의 대표를 뽑는 일은 어젯밤 좋은 꿈을 꿨다고 로또를 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최소한 우리 마을에 누가 선거에 나서는지 알고 투표해야 한다. 미국 정치학자 포퍼는 "민주주의는 피를 흘리지 않고, 선거를 통해 정부를 갈아치울 수 있는 정치체제"의 줄임말이라 했다. 링컨은 '투표가 탄환보다 강하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려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그들의 면면을 먼저 자세히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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