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진정(爲民盡政)', '국민을 위한 정치에 힘쓴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의 한승수 초대 국무총리가 총리로 내정돼 국회를 방문, 방명록에 남긴 글귀다. 한 전총리는 재임 때 다산초당을 찾아 '위민찰물(爲民察物)'이란 글귀도 남겼다. 백성을 위해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면서 총리는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DJ정권 시절 이한동 총리는 취임사에서 "가을 서릿발처럼 엄격한 몸가짐으로 나라 일에 충성을 다하겠다"며 '임기추상 진충보국(臨己秋霜 盡忠報國)'을 강조했다. 이같이 역대 총리들은 취임하면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모든 힘을 다 쏟겠다고 다짐했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긴 총리는 별로 없다.

헌법은 국무총리 권한을 "대통령을 보좌해 행정에 관한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 부처를 통할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한국의 대통령제 하에선 별 볼일 없는 '대체재'의 성격이 강했다. 대통령 하기에 따라 총리의 권한과 역할이 커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이 '의전', '방탄', '대독', '얼굴마담' 총리라는 별칭만 남기고 단명으로 끝났다.

조선 왕조 494년간 영의정은 총 162명, 평균 재임기간은 2년 7개월이었다. 노태우정부에서 이명박정부까지 25년간 국무총리는 총22명 평균 재임기간은 1년 1개월로 조선조의 절반도 안됐다. 총리실에서 15년 근무, 18명의 총리를 거친 정두언 전 의원은 자신이 쓴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에서 "총리가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안기부장 또는 실세 수석비서관보다 실권이 없었던 적이 많다"며 "총리실은 춥고 배고픈 부처다. 우리나라에서 국무총리라는 게 얼마나 별 볼일 없는 자리인줄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총리제를 약속했지만 그동안 국민은 책임총리를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최경환 전 원내대표는 "총리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게 문제"라고 정홍원 전 총리의 역할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정홍원 총리가 세월호 참사로 사퇴한데 이어 안대희 새 총리후보가 지명 6일 만에 전격 사퇴, 청와대가 '총리난(難)'에 빠졌다. 박 대통령의 총리난국 돌파 카드가 뜨거운 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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