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부터 아나운서까지 각 분야 대표 읽고 기록, 어른들의 지식 더해진 새로운 교훈과 감동 담아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우리시대 탐서가들의 세계 명작 다시읽기고민정 권오준 김용언 김응교 김진애 김혜리 류동민 안미란 안소영 오영욱 우석훈 이용훈 이정모 장석준 정혜윤 황경신 홍한별 지음|반비

건축가 김진애, 오영욱, 서울도서관장 이용훈, 라디오 피디 정혜윤, 경제학자 우석훈, 아나운서 고민정, 소설가 황경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탐서가들이 동화책 한 권씩 들고 모였다. 서가 깊은 곳 '내 인생의 동화'라 할 작품들을 꺼내온 저자들은 다시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동화와 함께 성장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어린시절 자신과 마주하면서, 그때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감동과 교훈을 발견하는 과정을 글에 담았다.

과학자인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에게 '플랜더스의 개'는 '감동의 눈물'이란 것을 가르쳐준 책이다. 이 관장은 해태 우유와 함께 배달된 만화책 '플랜더스의 개'를 통해 넬로와 파트라슈를 처음 만났다. 제 몸으로 둑을 막아 마을을 구해낸 '네덜란드 소년'처럼 위대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고작 그림 한 점을 보려다가 죽은 가난한 아이 이야기인데, 소년 이정모는 생애 처음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지금까지도 이 관장의 마음 속에 '플랜더스의 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아 있다.

영화 기자 김혜리에게 '보리와 임금님'은 최초의 솔 메이트였다. 친구 사귀는 기술이 서툰 여자아이에게 이 책은 마음속의 단짝이 되어 소속감과 지지를 주었고, 기자가 된 훗날까지 '좋은 서사와 캐릭터의 원형'을 선물해주었다.

이용훈 서울도서관장은 사서가 직업이지만 정작 어릴 때에는 책이 부족한 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책뿐 아니라,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소년은 그저 바깥에 나가 뛰어놀았다.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빌려 읽은 '꿈을 찍는 사진관'은 지금껏 기억나는 몇 안 되는 귀한 동화이다.

어린 시절에는 온몸으로 책을 읽지만, 그렇다고 그 책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용으로 간추린 요약본을 읽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린아이의 경험 세계로는 다 소화할 수 없는 내용도 있기 때문이다. 또 같은 문장이라도 어른의 입장이 된 지금에는 다르게 읽히기도 한다. 저자들은 유년 시절, 자신을 사로잡았던 동화를 원전으로 다시 읽으며, 이야기의 공백을 메우고, 새로운 교훈을 발견하고, 또 다른 감동을 얻는다.

작가 안소영이 어린 시절 읽었던 '장 발장'은 의문만을 남겨주었던 책이다. 착한 장 발장이 왜 은촛대를 훔쳤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소녀는, 그로부터 20여 년 후 원전이 되는 '레 미제라블'을 다시 읽으며, 비로소 의문을 풀었다. 그리고 삶의 고난이 성장의 토양이 될 수도 있음에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어른이 되어 알게 된 여러 지식들이 보태지면서, 동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경제학자 맬서스의 '인구론'에 대한 문학적 반격을 예리하게 읽어낸다. 구두쇠 스크루지의 개과천선이라는 단순한 스토리에 숨은,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놓치지 않는다.

노동당 부대표 장석준은 한때 '15소년 표류기'에 열광하며 '체어먼 공화국의 시민권을 발급받고자 했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다시 읽은 '15소년 표류기'에서 노골적인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남녀차별을 발견한 뒤, 이 책에 비판적 거리를 두고자 한다. 그리고 어떻게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어른이 되고자 한다.

같은 문장이 이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아나운서 고민정의 기억 속에 '인어 공주'는 그저 착하고 어여쁜 캐릭터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인어 공주는 포근한 바다의 품을 떠나 외롭고 거친 세상살이에 나서야 하는 인물로 읽힌다. 하지만 새로 읽은 원전에서 인어 공주가 사랑을 통해 불멸의 영혼을 얻는 장면을 본 뒤, 여전히 사랑을 긍정할 수 있다는 위안 또한 얻는다.

동화 두 번째 읽기를 통해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고전의 힘이다. 명작 동화들은 그 어느 책보다도 쉽고 아름다운 언어로 인생과 세상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주고, 지켜가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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