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밑 머릿결 비가 내린다

처마 아래 노파 몇이

씨감자처럼 모인다

은비녀가 하얗게 샌 불빛을 가로지른다

시간은 빗줄기처럼 공중에

가장 빠른 길을 내며 지나왔다

손아귀를 포갠 무릎이

추적추적 싹을 낸다

번들대는 웅덩이를 앞세우며

버스는 검은 여백을 부려놓는다

촛농처럼 흘러내린 환영들

힘겹게 앞문을 오른다

<감상> 어느 곳이 배경이었을까? 분명 도시는 아니다. 한적한 시골 정류장에 비는 내리고, 노인 몇 씨감자처럼 둥글둥글 모여 있다. 지나온 시간을 쳐다볼 수 있는 머무름이 있고, 그 앞으로 빗줄기는 빠른 걸음처럼 떨어진다. 버스가 오길 기다리는 맘 한쪽으로 갖은 생각이 오갔을 것이다. 그야말로 시골 정류장 풍경이 사진 한 장으로 눈앞에 머문다. 그 뒤 어디 작은 가게도 있고, 그 안으로 손 우산으로 비를 가리며 담배 한 갑 사러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재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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