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해서 도망치고 싶은 일상이 모여서 역사가 되고 우리들의 질긴 삶이 된다

김일광 동화작가

지난 선거일에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을 일곱 시간동안 걸었다. 물론 사전 투표를 한 뒤였다. 잔뜩 구름이 낀 탓에 뜨겁지도 않고 걷기에는 참 좋은 날씨였다. 이따금 구름이 흩날리는 고갯길을 넘을 때는 쉴 휴(休)와 신선 선(仙)자를 그렇게 만든 선인들의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 졌다. 산길이 끝나갈 무렵, 잠시 숨을 돌리며 숲 해설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광리에서 고개 너머 두천리로 시집가서 자식들 시집 장가 다 보낸 지금껏 고개를 넘나들며 살고 있다고 했다. 아직 정식 해설가는 못되었고 실습 중이라며 웃었다. 농사짓는 것보다 해설가가 나으냐는 우리 물음에 약간은 쓸쓸하게 웃으며 혼자서 농사짓기가 만만치 않다고 하였다. 덧붙여서 태어나서 지금껏 살아온 고향 구석구석을 아는 만큼 재미도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일상으로 넘어 다녔을 그 길에 대한 애정이 담뿍 느껴졌다. 지겹게 느껴진 게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것이 곧 삶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가마꾼들이 새색시를 태우고 바람처럼 넘어갔다는 그 고갯길을 우리는 신음 같은 숨을 토해내며 넘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호미곶 수산물 위판장에 나가보았다. 선거 다음날이라서 선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한데 그런 말은 일절 없었다. 언제나 처럼 배들은 생선을 싣고 오고, 중매인들은 펄펄 뛰는 생물들을 거래하였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생선처럼 비릿한 일상이고, 소박한 삶의 모습들이었다. 어떤 이는 작은 방어 한 마리를 얻어들고는 함빡 웃어대고 있었다. 경매에 들어가지 못한 거라고 했다. 간혹 그런 것을 나누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다 건강한 모습이었다. 나도 그냥 돌아올 수가 없어서 안면 있는 중매인에게 부탁하여 문어 한 마리를 샀다. 중매인이 나에게 호미곶 방파제에 그려둔 트릭아트 사진을 보여주었다.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려고 일부러 그곳으로 가서 일일이 촬영한 모양이었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가장 편안한 일상이 되고 있었다. 좀 더 친절하게 안내하고, 알려주며 작은 정성을 나누는 일상이 마음 따뜻하게 다가왔다. 지방 선거는 끝이 났다. 누군가는 당선의 기쁨을, 누군가는 낙선의 안타까움을 안았을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처럼 부산을 떨었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자들이 뉴스에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사는 게 재미가 없어서. 뭔가 빵빵 터지는 사건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뉴스에 등장하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나, 힘 있는 자, 나라 정책에 핏대를 세우다 보면 괜히 정의로워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란다. 너나없이 일상의 따분함을 그렇게 떨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람들은 일상을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상이 참으로 가치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월호 참사와 지방선거로 우리의 삶은 일상에서 한참 멀어져 있었다. 분노와 답답함은 우리를 움츠려들게 했다. 이런 감정은 소비 심리를 위축시켰으며, 이런 위축 상황이 우리 경제 내수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상이란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이다. 따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따분해서 도망치고 싶은 일상이 모여서 역사가 되고, 우리들의 질긴 삶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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