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기관의 필요성은 무엇보다 사전 알람(alarm) 기능에 있다. 하지만 그간 신용평가사의 평가능력은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신평사들은 위기에 처한 그 어떤 기업도 사전에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기업의 눈치를 보며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뻥튀기 평가'를 한다는 지적을 받았고, 다른 평가사들과 다를 바 없는 이른바 '붕어빵 평가'를 한다는 조롱을 받았다. 여기에다 기업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뒤늦게 조정하는 '뒷북 평가'에 이르기까지 평가사들 스스로의 신용은 속된말로 '꽝'이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 알려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도 국제적으로 불신을 받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신용평가기관들을 믿지 못하겠다며 독자적인 신용평가기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달 초 중국을 방문한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많은 국가가 신용평가기관의 객관성이 더 높아지기를 원하고 있다"면서 "중국과 합작해 독립적 신용평가기관을 설립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같은 반발은 신흥국 대표주자인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가 세계 3대 평가사가 개발도상국 경제를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대신한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4월 S&P가 자국 신용등급을 'BBB-'로 한 단계 강등하자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최근 한국기업평가(한기평)가 포스코의 등급을 AAA(S)에서 AA+(S)로 강등한 것을 두고 '역사적인 일'이라며 호들갑이다. 이는 한기평이 1994년 AAA등급을 매긴지 20년만의 일이기 때문이다. 또 AAA등급이 국내 기업 중 현대자동차와 SK텔레콤, KT, 포스코 등 단 네 곳에 불과했는데 포스코가 그 '왕좌'에서 밀려난 것이다. 하지만 포스코는 국제신용평가사들로부터 이미 지난 2009년부터 지속적으로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돼 왔다. 피치는 현재 BBB0, S&P는 BBB+로 평가하고 있다. 한기평이 평정요지로 내세운 철강시황 둔화에 따른 수익성 저하, 자본적 지출 투자 등으로 재무부담이 가중됐다는 등의 문제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한기평의 또 한번 '뒷북 평가'를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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