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열하고 무능한 조선의 민족성으로는 자치를 손에 쥐어준다고 해도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제창에 힘을 얻은 민족운동가들이 파리강화회의에서 세계 열강에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겠다는 주장에 대해 "정세를 모르는 어리석은 짓"이라 폄하하며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노력으로 독립을 얻는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 윤치호(1865~1945)의 일기 일부다.

일기에 담긴 언어는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한 사람의 인간이 사유하고 생활하는 그자체를 오롯이 보여주는 글이 일기다. "책을 보고 소일하다. 저녁 7시반 알렉선생댁에 가서 저녁먹고 놀다가 10시에 돌아오다. 타국(他國)사람이 청하여 대접해 주는 것은 고마우나 내나라 지체가 너무 더러우니 타국 사람에게 부끄럽기 한량없다. 이런 청을 받는 것은 악(樂)이 아니라 우환이 되니 불쌍하도다. 조선사람이여, 언제 타국인과 어울려 마음편히 놀 때가 올런지." 1888년 6월 2일의 윤치호 일기다. 윤치호는 안창호, 양기탁, 이동휘 등과 신민회를 만들어 국민계몽운동에 참여하고 독립협회장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대성학교 교장으로 있던 1907년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이 결성한 신민회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왜곡 조작해 독립운동가들을 검거한 '105인사건'으로 6년형을 선고받았다가 3년만에 출소한다. 출소후 그는 철저한 친일파로 변절해 조선총독부 일간지인 매일신보에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글을 썼다. 1893년 11월 1일의 일기에는 "만약 내가 마음대로 내 고국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일본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이처럼 친일의 대명사인 윤치호를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그는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근대화의 기초를 일제 식민지로 보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주말 귀국해 총리 후보자 재가 여부를 검토키로 했다고 한다. 일국의 총리를 지극히 편협한 종교관과 식민사관에 발 담그고 있는 사람을 쓴다면 국가의 정통성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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