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시대 지역문화 현주소- (1)문화로 밥 먹고 살 수 있는 세상

허정선 포항시 문화예술과·미학박사

글 싣는 순서- (1)문화로 밥 먹고 살 수 있는 세상, (2)공연장 문화시설의 역할, (3)공공미술과 벽화, (4)시립예술다의 존재 이유 (5)자생적인 도시 거리문화.

◇문화융성시대 지역문화 현주소- (1)문화로 밥 먹고 살 수 있는 세상

이웃집 이야기다.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림그리기와 디자인에 남다른 재주가 있어 미술대학을 가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반대를 한다. 이유는 미술로는 밥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아버지와, 그래도 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려는 어머니 사이에 요즘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딸과 아버지는 대화가 단절된 듯 서로 말이 없고, 아버지는 술 한 잔만 걸치면 하소연하듯 이렇게 되풀이 한다.

"요즘엔 대학에 갈 필요가 없어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무원임용고시나 다른 취업시험 준비해 바로 직장구하는 게 현명합니다. 대학교육 4년, 부모 등골 빠지게 시켜봤자 돈만 아깝고, 특히 예술계는 특출하게 이름을 날리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밥 먹고 살기 힘들어요"

틀린 말이 아니다. 한 이웃 가정의 불협화음을 목격하면서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이런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박근혜정부는 2013년 출범과 동시에 문화를 통한 경제 부흥을 꾀하고, 다문화시대에 계층간, 지역간, 문화간 갈등을 없애고 화합함으로써, 국격을 높이고 국민이 행복해지는 국정방향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정부가 '경제부흥', '국민행복', '평화통일기반구축' 등과 더불어 4대 국정기조로 내세운 '문화융성'의 골자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권영빈 위원장은 중앙일보 시론에 '문화융성'을 "문화가 밥 먹여주는 세상"으로 표현하면서, 문화융성 실천 사례로 영국의 뉴카슬(Newcastle upon Tyne)과 강원도 정선 같은 문화경제 도시를 꼽았다(2014년 2월 20일).

이웃집 아버지는 우리의 현실이 미술로(문화로) 밥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말하는데, 문화정책을 입안하거나 시행하는 사람들은 '문화융성'을 통해 문화로 밥 먹고 살 수 있고 그래서 행복해지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

과연 문화가 밥 먹여 주는 세상이 올까? 이웃집 딸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면, 그걸로 밥 먹고 살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문화가 밥 먹여주는 세상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인문정신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융성' 정책실천의 근간이 인문학에 있음을 직시하고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2014년도 다양한 정책들을 제시하였다.

이 중에 인문학 육성 지원사업과 기초예술분야(순수예술분야) 지원사업이 아마도 가장 기본적인 문화융성 정책일 것이다.

2014년 공공도서관, 공립박물관, 작은도서관 확충 지원 사업과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등 '인문학의 생활화'를 위한 여러 인문학 육성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고, 기초예술분야 지원사업도 민간공연단체 대관료 일부 지원이나 무대기술스텝 비용 지원, 유휴시설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 조성 사업 등을 통해 추진되고 있다.

또한 예술인들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초 생계비를 지원하는 '예술인복지법' 등 예술인들의 창작 기반 조성 사업이 다각도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이웃집 아버지처럼, 대한민국의 현명한(?)부모들은 자녀들이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직업전문기술을 익혀 곧바로 취직하기를 원한다. 대학진학은 취직 이후의 문제가 되었다.

이웃집 딸처럼, 많은 청년들은 그나마 학제적으로 인문학을 접하고 배울 수 있는 대학캠퍼스의 낭만을 포기해야만 하는 진통을 겪고 있다.

물론 대학만이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아니다. 문제는 대학을 진학하더라도 영어능력평가시험에 높은 점수를 받고, 각종 전문기술자격증을 많이 취득하려고 대부분의 돈과 시간을 써야 하는 현실이다. 인문학 공부가 취직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번 천번 이론적으로 듣는 인문학보다 직접 동·서양 고전과 철학 서적을 가까이 하고 창작동아리 활동에 몸을 적셔보고, 시를 음미하고 소설을 읽고, 미술관 전시와 연극에 가끔 푹 빠져보는 일은 '인문학의 생활화'를 위한 기본적인 것이다.

청년시절, 이 기본을 쌓기 위해 가치 있는 게으름을 피우고자 한다면 자칫 20대 태반이 백수인 이태백대열에 끼게 된다.

기본에 대한 충실은 문화 부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요구되는 것이다. 세월호의 참사는 오늘의 실수가 아니며, 오랜 세월 기본을 외면하고 압축성장을 지향해온 역사적 과정의 축적물이다.

취업시험에 인문학 과목이 있지만, 그것은 암기식 위주의 인문지식 공부이지 기본을 체화함으로써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실천적인 인문학 공부가 아니다.

인문학 공부는, 바늘구멍을 뚫고 취업의 대열에 올라선 영웅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 영웅들의 대부분이 21세기를 끌고 갈 우리사회의 관직이나 대기업 등 요직에 임용된다.

열린 행정을 뒷받침해주는 '정부 3.0' 전략은 부처간 소통과 협업을 주장하지만 교육, 문화, 경제의 엇박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혁신적인 문화융성 실천전략을 무색케 할 수도 있다.

교육과학부는 대학구조조정 때문에 인문학부와 예술학부를 학과통폐합 우선 순위로 삼고 있고, 문체부는 인문학의 생활화를 주장하고, 고용노동부는 청년실업률을 줄이는 방안으로 기술직고용창출을 늘리려 한다. 우리의 모순된 현실이 한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한류의 확산을 위해 정부가 대폭 지원하는 문화산업(특히 2차 창작분야인 5대 킬러콘텐츠산업, 즉 영화, 게임, 대중음악, 에니메이션·캐릭터)도 인문학이 바로 서고 기초예술분야 순수예술가들이 밥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이 되어야 기본에 충실한, 작품성 있는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고 세계 시장 속에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다.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할 일이 있는 사회, 그리고 작곡가, 극작가, 연출가, 연극배우, 시인, 소설가, 클래식 아티스트, 화가, 조각가, 무용 아티스트 등이 자신의 신념과 열정을 창작세계에 전적으로 바치고도, 밥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때 '문화융성'의 꽃은 비로소 활짝 필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미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에 의하면, 21세기는 경제적 자본의 시대가 아니라 문화적 자본의 시대이다.

권력을 좌우하는 것은 돈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리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이 더 가치 있는 시대, 심적인 것이 물적 자본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은 사회구조적으로 미적감각(취미)의 계급화가 형성되는 자본주의사회의 문화현상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문화가 화두인 요즘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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