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쇄신에 대한 국민적 요구,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여당, 월드컵 대표팀처럼 실패 자명

이재원 시민정치연구소 소장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 한국축구가 월드컵 본선 조별 예선전에서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세 번의 예선경기를 지켜 본 축구팬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승패결과 때문만이 아니다. 이렇다 할 제대로 된 화끈한 경기 한번 펼쳐보지 못한 졸전에 더욱 화가 나는 것이다.

끈적거리는 남미 특유의 고온다습한 기후와 고산지대에 위치한 경기장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나름대로 숨이 가쁠 정도로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 번의 예선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국민들 역시 답답함에 숨이 헐떡거릴 정도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이번 대표팀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이번 대회결과를 두고 언론과 축구팬들은 '의리사커'라고 지칭하며 대표팀 사령탑인 홍명보 감독의 팀 운영 스타일을 비난했다. 대표팀 구성과정에서부터 불거진 선발원칙 무시와 주전선수 기용 등 전술적인 면에서의 대책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선수구성이나 선수기용은 전적으로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전술을 짜고 그에 따른 임무를 수행할 선수기용은 감독이 할 일이지 관계자 외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언론과 많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비난이 일고 있는 것은 홍명보 감독이 스스로 만든 선발원칙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원칙에 부합하지 않은 선수를 굳이 핵심 공격수로 선발하고 상황에 걸맞게 선수구성에 변화를 꾀해야 했음에도 고민조차 하지 않은 가운데 기존스타일을 고집한 것이 바로 '의리'만을 내세운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만약 결과가 달랐다면 그래도 비난할 수 있냐하고 홍명보 감독은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참패로 나타났고 그 원인은 원칙파괴와 내 사람 위주라는 무리수를 둔 감독에게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막판 비난여론에 등 떠밀린 모양새였지만 약간의 선수기용 변화로 치러진 마지막 예선전에서의 선전이 이를 반증한다.

비약일지 모르나 필자는 이번 월드컵 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 현 정치상황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원칙없는 인사추천으로 두 번씩이나 국무총리후보가 낙마한 것이나 세월호참사 이후로 대대적인 사회변화를 담당할 인적쇄신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음에도 이를 모르쇠로 일관하며 제 식구 감싸기에 변함없는 정부와 여당이 이번 월드컵대표팀 운영스타일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굳이 다르다면 원칙에 맞지 않는 선수는 결국 뽑혀서 참담한 경기결과로 이어졌고 총리후보는 다행히도 낙마했다는 정도.

세월호참사 이후 우리사회의 최대화두는 '변화'다. '적폐'라고 불리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과감히 바꾸고 전반적인 사회작동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 급선무다. 대통령 스스로도 대국민 앞에 눈물까지 흘리며 약속한 사항이다. 스포츠경기든 정치든 이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용병술이야말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 자질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서 '의리'라는 단어가 유행되고 있다. 의리는 개인 간의 사적인 관계에서는 하나의 미덕이 될 수는 있어도 결코 대의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 덕목은 될 수 없다. 대승적 차원에서 '의리'는 절대 '끼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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