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에 축대가 무너졌다

물의 혀가 가 닿은 돌덩어리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내 안에 꺼끌꺼끌한 미뢰 같은 게 돋기도 하였다

그게 너에게 가는 것, 바늘이기도 한 것,

사랑이라고 하였다

간혹 불운이

지나가는 사람을 그 밑에 세워두기도 했으나

그를 너는 아내라고

남편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앙다문 입처럼 축대가 다시 세워지고 있었다

지상에는 행진곡이 휩쓸고 지나갔다

<감상> 미뢰(味?)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본다. '척추동물에서 맛을 느끼는 꽃봉오리 모양의 기관'이라 적혀있다. 기관(機關)이란 뜻도 다시 찾아본다. '생물체에서 구성하여 나름의 특정한 생리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이라고 안내한다. '늦게 도착한 편지'란 제목을 상상하며 시를 다시 읽지만 내용과 제목을 바르게 줄긋기 할 수 없다. 그 난해함은 어려운 책 덮어두고 곁에 쌓둣 그냥 감정의 흐름으로 마음에 쌓아둔다. 그런데 미뢰 같은 것이 시를 핥는다. 아, 사랑! 바늘, 불운, 아내, 남편, 장마, 축대, 행진곡. 별거던가 나이 들면 깨달음이 나이처럼 오는 것인데…. (하재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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