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시대 지역문화 현주소- (3)공공미술과 벽화

브라질 빈민촌 벽화작업.

요즘 곳곳에 벽화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제작한지 얼마 안 되는 벽화는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주지만, 오래된 벽화는 남루해진 옷처럼 색깔이 바래고 형태가 지워진 곳이 많아 지저분한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벽화는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리고 벽화는 시 전체적인 도시환경미학 프로젝트에 입각해 통일성을 갖추되, 해당 지역의 특성을 살려 조화롭게 제작해야 한다. 이것은 공공미술(public art)의 한 장르인 벽화의 '공공성(the public)'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실내 전시는 작가가 자신의 철학과 개성에 따라 마음껏 표현할 수 있지만, 공공미술은 작가의 개성이 그 지역의 지리적 환경과 사회·문화·역사적 환경이 갖는 특성 속에 녹아들게 해야 한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어린왕자 조형물.

공공미술 작가는 공공성을 우선시 하면서도, 작가의 개성을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신의 작업을 왕왕 실패로 이끌 때가 많다. 그만큼 공공미술 작가는 경륜과 남다른 솜씨를 갖추어야 한다. 공공성과 개성, 이 양립성을 자연스럽게 살려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과제이다.

경상남도 통영의 동피랑 마을과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은 벽화로 인해 관광지로 각광받게 된 국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두 마을은 닮은 점이 많다. 바다를 끼고 있고, 낮은 슬레이트 지붕과 콘크리트 집들이 산비탈에 즐비하게 늘어선 '달동네'이며, 낙후된 근대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벽화 프로젝트로 마을경제를 살린 이른바 '문화경제' 마을이다.

포항 기계면 봉계리마을 부조벽화.

그러나 공공미술의 관점으로 볼 때, 두 마을은 아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동피랑 벽화는 공공미술의 성격을 굳이 나타내려 하지 않았다. 공공성에 기반을 둔 통일된 주제나 미감이 없고, 통영이란 도시의 지리적, 사회문화적, 역사적 환경을 살려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공공성보다 작가 개개인의 기질이 돋보였다. 굳이 공공성을 살려낸 작품을 찾을 수 있다면, 통영의 문화적 자산인 작곡가 윤이상의 얼굴을 그린 벽화와 생태환경 자원인 문어와 물고기 등 바다 속 장면을 그린 수족관 벽화가 있었다.

영천 자갈돌 부조벽화·철문.

윤이상을 그린 벽화는 뜬금없이 갑자기 한쪽 벽면에 판화처럼 얼굴이 붙박혀 있어 아쉬움을 자아냈고 수족관 작품만이 주제나 미감에서 통영의 이미지를 그나마 풍기고 있었다.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은 이와 다르다. 우선 멀리서 보면 성냥갑처럼 생긴 페인트칠된 집들의 풍경 자체가 시각적으로 미적 충격을 던져 주었고, 골목골목 좁은 미로를 누비면 어디서 무엇이 나타날 것인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2009년부터 시작된, 감천문화마을 조성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을미술프로젝트-생활공간, 미술로 가꾸기' 지원사업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이 프로젝트는 3년차 사업인데, 1차년도에 벽화의 일회성으로 인한 한계를 깨닫고 철저한 사후관리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으며, 2, 3년차 사업 때에는 영구적이거나 반영구적인 부조 벽화와 환조 조형물로 초기의 평면벽화를 보완?대체하였고 올해부터는 마을의 숨은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한 작업이 더러 보였다.

부산 감천동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미술작업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문화마을'로 변화된 감천동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찻집이나 카페, 공방, 숙박시설 등도 꾀 많이 들어서고 있어 마을조합이 활성화되고, 젊은 층 인구 유입이 늘어나 노인들 만 눈에 띄던 마을에 '젊은' 기운이 느껴져 생기가 감돌았다.

이러한 감천문화마을 조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산시와 사하구청, 민간디자인기업 '아트팩토리인다대포'와 작가들, 그리고 주민들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었다. 민관 협업이 제대로 성과를 낸 결과물이다. 이러한 결실의 배경에는 문화행정의 적극성이 있었다.

부산시는 2010년 창조도시본부를 두고 주요구청에 창조도시기획단을 만들어 문화예술과와 도시계획과 등 관련과의 협업 시스템을 구축해 민간예술기업이 창조적인 기획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포항시에도 곳곳에 벽화가 많이 등장한다. 해병대, 오천, 구룡포 하정리, 장기, 동해, 중앙상가 실개천 1944카페 골목 벽화 등 포항시 소재 벽화는 25개소 남짓 된다.

이 중에 최소 1년을 넘겼지만 사후관리가 비교적 잘 되고 있으면서,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룬 것은 1944카페 골목벽화이다. 이 골목은 원래 우범지대여서 청소년들에게 유혹의 늪이 될 수 있는 장소였다. 미술전공자인 1944카페 대표는 폐허가 된 한옥을 개조해 전통미와 현대미를 융합한 카페를 운영하면서, 지역청년작가들과 골목 벽화를 조성하고 각종 카페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민간 주도로 성공한 문화경제 사업 모델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문득 마약, 범죄, 결핵, 가난으로 얼룩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빈민촌 벽화가 떠올랐다.

두 명의 네덜란드 친환경 미술가가 이곳을 여행하던 중 무지갯빛 색으로 벽화를 제작해 그늘진 마을에 희망의 빛을 불어넣었다. 브라질의 이 벽화는 군더더기 없이 마을 전체를 한 폭의 그림처럼 디자인한 우수한 벽화 사례이다.

벽화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시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는, 2013년도 북구 기계면 봉계리 (구)기남초등학교 폐교의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실내 전시기획과 달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많은 시행과 착오를 거쳐 결과물을 얻어냈고, 다음에 2, 3차 프로젝트가 실행된다면 봉계리 환경에 더욱 맞는 공공미술 작업이 보완되어야 한다.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면서, 그리고 여행을 통해 만난 벽화를 보고 얻어낸 중요한 교훈이 있다. 공공미술 기획은 장기적인 미적 안목과 철저한 전문가의 기획력이 필요했고, 후회할 작업을 하기보다 차라리 주어진 환경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즉 미술이라는 것이 반드시 무엇을 그리고, 부수고,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의 환경을 보듬고 잘 살리는 것, 그리고 심지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도 미술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마을미술프로젝트' 주관처인 문체부 산하 '마을미술프로젝트추진위원회'에서는 2012년부터 사후관리 때문에 벽화제작을 금지시키고 부조, 환조 작업을 권고하고 있다.

벽화 제작이 우후죽순처럼 많아지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는 병적인 미적 성향이 내게는 없는지 진단해보아야 한다.

벽화를 포함한 도시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실행을 위해서는, 먼저 인문학에 근거한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정립하고 이에 따른 도시 미학 수립, 즉 도시가 어떤 미를 지향하고 있는지 방침을 결정하고, 이를 뒷받침할 문화철학을 수립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일례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은 포항의 문화적 정체성을 근대성에 두고, 스틸아트로 근대성을 구현한 공공미술의 성공적 사례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진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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