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벌레 한 마리가 먹는 일을 멈추고 허공에 매달렸다

욕망을 닫고 자신을 봉인하고 있다

제 안에 파고들어 속죄의 시간을 살고 있다

침묵 속에서 잘 무르익고 있다

나 수십 년을 살아도 식용 한번 버려본 적 없다

온몸을 닫고 죄에서 벗어나 본 적 없다

배추벌레가 제 껍질을 열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날

나는 여전히 다섯 평 텃밭을 꼬물꼬물 기고 있을 것이다

<감상> 배추나비애벌레는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나비로 완전탈바꿈을 한다.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탈바꿈을 바라보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마치 그 자체를 해탈이라도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시인은 식용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하루하루 생이 어쩌면 죄를 짓는 일임을, 우화를 시작하는 배추벌레 번데기에서 인식한다. 고도의 수식어가 필요한 세속과 탈속의 과정이 이 세상 어디에 있던가. 맘먹은 생활이 바로 탈속이고 천국 아닐까? (허재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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