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시대 지역문화 현주소- (4) 시립예술단의 존대이유

허정선 포항시 문화예술과·미학박사

"보통 이런 콘서트를 감상할 때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 치는 것을 싫어한다고, 아까 뒤에서 누가 얘기하더군요"

지난 5월 포항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때 객원지휘자로 초빙된 금난새 지휘자가 관중을 향해 공연 관람예절에 대해 언급한 멘트다. 세련미가 가득했지만, 한편으로 사람 냄새나는 구수한 멘트였다. 은유의 매력이 살아있다. 만약 금난새 지휘자가 "클래식 콘서트를 감상할 때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치면 안 됩니다. 한 편의 전곡 연주가 다 끝나면 박수 치세요"라고 직언했다면, 클래식공연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살짝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장면을 주목한 관객이라면 그의 세련되고 구수한 멘트에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마음속에는 다음 시립교향악단 콘서트를 또 관람하고 싶다는 충동이 자연스레 일어나지 않았을까?

포항시립교향악단

시립예술단은 시민들에게 이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순수예술을 지향하면서도, 시민들에게 어렵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서는 '금난새 지휘자의 관람 멘트'같은 그런 존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흔히 일반대중들은 시립예술단 공연이 지루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시립예술단 공연이 대중예술의 면모보다 순수예술(고급예술)의 특성을 더 많이 보여주므로 고차원적이어서 이해하기 힘들고 어렵다는 것이다.

포항시립합창단

한편, 클래식음악 애호가들이나 연극애호가들은 더욱 수준 있고 깊이 있는 공연을 원하기도 한다. 전자에 맞추면 공연의 수준이나 깊이가 부족하고, 후자에 맞추면 다수 시민들이 시립예술단을 멀리하게 된다. 예술성과 대중성,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다 잡을 수만 있다면, 일거양득의 쾌재를 부르겠지만 이 두 마리 토끼는 동시에 잘 잡히지 않는다. 예술성과 대용성, 이 양자의 갈림길에서 시립예술단은 어느 길을 선택해야할 것인가.

이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만 선택해야 한다면, 시립예술단은 단연코 예술성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대중성을 수용하여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시립예술단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간혹 성공한 무대도 있지만, 가끔은 양자의 갈림길에서 어정쩡하게 헤매고 있는 인상을 받은 적도 있다. 물론 이런 변화의 시도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시립예술단은 무엇보다 시민의 미의식(취미)이 상업화된 공연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예술의 본성과 가치를 심어줄 수 있는 '좋은'공연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려야 한다. 예술의 본성이 무엇인지, 먼저 예술 정의의 문제부터 되짚어야겠지만 예술의 본성은 최소한 상업화된 공연을 통해 구현되지는 않는다. 시립예술단은 '좋은' 예술을 시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의 미의식 교육을 꾸준히 감당해야할 몫이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시립예술단은 민간예술단체와 뚜렷이 구별된다.

재정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는 민간단체는 어쩔 수 없이 상업화를 지향하는 공연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시립예술단은 기본적인 시재정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민간예술단체와 달리 시민들에게 순수예술을 만나는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반시민들은 상업화된 자본주의 예술시장이 만들어가는 미의식(취미)의 생산구조를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민간공연단체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예술성보다 대중성을 지향하는 공연을 제작해야할 때가 있고, 대중들은 이런 공연을 손쉽게 만나게 된다.

이런 예술시장 구조 속에서 대중들은 성숙된 미의식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점점 박탈당하고, 예술의 가치는 물론 예술의 본성을 망각하기 쉽다. 특히 디지털화된 대중매체시대는 정보의 범람과 사이버공간상의 간접 경험이 증폭되고 있어, 몸으로 공연을 직접 체험하는 것보다 시각과 청각만으로도 간접적이지만 자극적인 공연 경험을 할 수가 있어, 미의식의 성숙은 더욱 기대하기 힘들다. 대중들은 예술의 본성을 구현하려는 예술작품(works of art)보다 수없이 쏟아지는 상업화된 예술산품들(art products)을 대중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부딪치게 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시립예술단이 상업화되지 않은 '좋은 공연'을 시민에게 제공하려면 다음 몇 가지 문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무엇보다 예술단원들의 긍지와 자부심이 기반 되어야 한다. 긍지와 자부심은 보수 문제와 직결된다. 예술단원들은 그들이 아티스트 대열에 들어가기 위해 대부분 청소년시절부터, 심지어 유아기 때부터 쏟아 부은 교육비에 비해 실제로 받고 있는 급여는 상대적으로 너무 빈약하다. 시민을 위해 열정을 바치고자 하는 의지는 보수 문제와 직결된 만큼 적절한 급여 산정이 절실하다.

둘째, 예술단운영 시스템이 보다 전문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포항시립예술단은 교향악단, 합창단, 연극단이 있다. 설립 당시부터 예술감독이 없었으며, 상임지휘자와 상임연출자가 예술감독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각 단의 단무장이 문화예술과 일반행정공무원과 기획, 홍보 업무를 협력·추진해왔다. 그러나 2013년부터 포항시립예술단 운영에는 변화가 있었다. 포항시립연극단의 경우 2013년부터 상임연출자를 공석으로 두고 공연 때마다 객원연출가를 초빙하여 상임단원들과 공연을 제작하고 있고, 포항시립교향악단의 경우도 2014년도부터 상임지휘자를 공석으로 두고 객원지휘자를 초빙하여 운영하고 있다. 포항시립합창단만이 상임지휘자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상임지휘자나 상임연출자 없이 객원 초빙으로 운영되는 것과 상임체제로 운영되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여기서 단점만을 언급하면, 객원지휘자는 일회적 공연 위주로 단원들을 훈련시키기 때문에 단원들의 연주기량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 가르치는 길에 왕도가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상임운영체제가 아니면 예술감독이라도 있어야 한다. 공연의 성공과 실패를 책임진다는 의미에서도 중요하며, 예술감독이나 상임지휘자 또는 상임연출자의 깊이 있는 예술단운영방침 하에 일관성 있는 훈련을 받으면서 가끔씩은 특별 공연의 특색에 맞게 객원 지휘자나 연출자를 초빙하여 새로운 훈련방식과 연출방식을 접하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국립극단이 상임연출자나 상임단원 없이 정기공연 때마다 객원연출자를 초빙하고, 오디션제도를 통해 각 공연의 성격에 맞는 배우들을 선발하여 3~4개월 동안의 공연 연습 끝에 영근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도 예술감독 책임 하에 진행된다.

셋째, 재정과 인력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시에서 재정적 지원을 뒷받침 하지 않으면 시민들의 미의식 향상을 위한 깊이 있는 순수예술 공연은 무대에 올릴 수가 없다. 순수예술은 정부의 지원 없이는 육성될 수 없기 때문다. 예술창작의 기초분야인 순수예술이 무너진다면, 응용예술(2차 문화산업 등)은 물론 문화?예술 교육도 활성화 될 수 없다. 인근의 대구광역시나 울산광역시는 각 단마다 계약직으로 전문직을 두어, 공연기획과 홍보를 책임지는 인력 인프라와 재정 인프라가 기본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기초자치단체로서 포항시는 광역시 단위 시스템을 구축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여건 속에 개선이 가능한 부분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때 시립예술단은 수준과 깊이를 끊임없이 구현하면서도, 시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상업화된 대중성을 쫓는 것이 아니라 '금난새 지휘자의 관람예절 멘트'처럼 세련되지만 구수하고 친근한 감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간단하게는 지휘자와 연출자의 멘트와 단원들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서도 느껴질 수 있다.

나아가 시민들에게 참된 예술의 본성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심성을 기르게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시립예술단이 지향해야 할 길이며 존재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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