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은 곧은 선비정신의 표상이다. 원칙에 충실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자세를 일평생 고수한 인물이다. 그는 요즈음 관점으로 보면 꽉막힌 벽창호 같은 인물이다. 조선시대 국시인 유교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속된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국왕의 명도 조식의 곧은 선비정신을 꺾지 못했다.

어느 날 조식은 맹자의 '언제나 뜻을 고상하게 하라는 상지(尙志), 반드시 뜻을 견지하라는 지지(持志)'를 몸소 실험해 보기로 했다. 그는 대접에 물을 가득 담아 들고 밤을 새우기로 작심했다. 이를 본 주위 사람들이 모두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지만 그는 물 대접을 들고 꼬박 밤을 새우면서도 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조식은 관직에 나가지 않고 자신이 거처하는 산해정의 왼쪽 창에 '경(敬)', 오른쪽에는 '의(義)'자를 써 붙여 두고 오직 학문에만 전력했다. 송나라 학자 허형이 "이윤(伊尹)이 뜻한 바를 뜻하고, 안자(顔子)가 배운 바를 배우며, 세상에 나가면 공을 세우고, 들어앉으면 절조를 지킨다"는 구절을 본 뒤 자신을 절제하기 위해 써 붙인 글자였다. 조식의 서릿발같은 선비 기상은 '조선왕조실록'의 '졸기'에서도 확인된다. "조용한 방에 단정히 앉아 칼로 턱을 고이는가 하면 허리춤에 방울을 차고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여 밤에도 정신을 흐트린 적이 없었다. 한가로이 지낸 세월이 오래되자 사욕과 잡념이 깨끗이 씻겨 천 길 높이 우뚝 선 기상이 있었고, 꼿꼿한 절개로 악을 미워해 선량하지 않은 향인(鄕人)은 엄격하게 멀리했기 때문에 감히 접근하지 못했으며, 오직 학도들만이 어울렸다"라 기록했다.

조식이 턱을 고인 칼에는 '내명자경(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안으로 나를 깨우치는 것은 경(敬)이며, 밖으로 결단하는 것은 의(義)다'는 글귀다. 남명이 허리춤에 달고다닌 방울을 '성성자(惺惺者)'라 불렀는데 조금만 방울이 울려도 스스로를 경계하고 꾸짖어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였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교조적이라 할지 모르지만 배울점이 많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열고 있는 '경상도 개도 700년 기념 특별전'에 전시된 남명의 '성성자'와 '칼'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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