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에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 천진으로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태항산을 여행한 적이 있다. 천진에서 태항산 가까운 석가장이란 곳까지 버스를 타고 달리는 한나절 내내 길 양 옆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이 이어졌다. 이 엄청난 광경을 보면서 '사람이 참 하잘껏 없는 존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광활한 벌판의 옥수수 한 알같은 미미한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겠거니 하는 생각에서 였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건륭제의 칠순 잔치 사절단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로 들어갈 때 드넓은 만주 벌판을 처음 보고는 '목놓아 실컷 울고싶은 곳'이라 했다. 끝없는 벌판을 바라보던 연암은 "참말로 울기 좋은 장소다, 한 번 이곳에서 실컷 울어보고 싶구나(好哭場可以哭矣)"라 탄식했다. 동행했던 한 진사가 '호곡장(好哭場)'이란 말에 "이렇게 넓은 벌판을 보고 하필이면 '목놓아 울음울기 좋은 곳'이라 하느냐"고 물었다. 연암은 "울음은 슬퍼서만 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인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七情)이 극에 이르면 모두 울음이 터져나오는 것"이라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지난달 31일 7·30 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2011년 새 정치지도자를 바라는 국민 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났던 '안철수 현상'과 안 대표의 상징이었던 '새 정치'는 눈가에 맺힌 눈물과 함께 막을 내렸다. 그가 보인 눈물은 희노애락 애오욕 칠정 중 분노의 눈물일까, 아니면 욕심의 눈물일까. 7·30재보선에서 정치신인에게 패한 손학규 새민련 상임고문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살겠다"며 흔한 눈물도 없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파란만장한 정치 이력을 접으면서도 애써 담담한 표정이어서 안철수 의원과 비교가 됐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운다고 했지만 요즘은 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고, 남자가 우는 것을 금기시 하는 것은 일종의 가부장적 세뇌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퇴유절(進退有節), 나아가고 물러남에는 절도가 있어야 한다. 안 의원의 눈물과 손 고문의 담담함, 두 정치가의 물러남이 이채롭다. 연암은 '영웅은 제 때에 울줄 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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