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 직접 쓴 글을 육필(肉筆)이라 한다. 컴퓨터가 대중화 되면서부터 육필원고 보기가 어려워졌다. 가끔 글씨를 멋스럽게 쓴 작가들의 육필 원고를 보면 귀하게 느껴진다. 육필원고는 이제 유명 작가의 문학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됐다. 작고한 작가나 시인의 육필원고는 제법 대접을 받는다. 아마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희귀한 골동의 목록에 낄 것이다.

이메일로 날아가는 편지보다 직접쓴 손편지의 맛이 다르다. 마누라에게 큰 생일선물 대신 손편지를 전하면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은 손수 쓴 글에 알뜰한 정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 쓴 글은 특별하게 마음이 가고 긴 대화를 하고난 듯한 기분도 든다. 아마도 그래서 살냄새가 나는 '육필'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육필의 좋은 점이 많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자판을 두들길 때와는 다른 마음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각박해 진 것도 돌이켜 보면 육필이 사라지면서 부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디지털 시대에 유명 월간 잡지에 이름 있는 만년필 회사의 만년필 광고가 실리는 것을 보면 누구에게나 손으로 쓰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손글씨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다.

요즘은 유명작가나 연예인들의 사인회에서 손으로 쓰는 글이 아닌 이름 정도가 겨우 남아 있다. 하지만 이마져도 사라지고 있다. 휴대전화 등으로 자기 모습을 촬영하는 '셀피'(selfie·셀카의 영어식 표현)가 일반화 되면서 유명 인사와 팬들의 전통적 교류 수단인 '사인'마저도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4일 셀피의 유행으로 사인이 소멸돼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런던 서부의 극장가 웨스트엔드에 극장 여러 곳을 운영하는 캐머런매킨토시사(社)의 닉 애럿 이사는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스냅챗 등 소셜미디어가 부상하면서 셀피가 사인을 완전히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유명 컨트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도 "앞면 카메라가 있는 휴대폰이 발명된 이후 사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본 적이 없다"면서 "사인은 이제 완전히 한물 간 구식이 됐다"고 말했다.

셀피가 그나마 사인의 형식으로 조금 남아 있던 육필의 흔적까지 지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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