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복의 백두산 탐방기 - (4)우리 땅을 밟고 오를 백두산 그리며 뒤돌아서다, 북파 제2산문~비룡폭포 버스로 이동, 온천장 지나 전망데크까지 1㎞ 계단길, 68m 낙차로 만들어진 백두산 유일 폭포, 겨울에 얼지않고 흘러 송화강 만들어내

비룡폭포의 장관에 환호하는 필자 부부.

천문봉을 내려오면서 겪은 일이 생각난다. 북파 제2산문까지 내려서는 지그재그길이 엄청 흔들어대는 통에 몸을 가눌 수 없음은 오를 때 이미 겪은 일이라 미리 각오를 하고 탄다.

중국 현지 기사들이 자기 멋대로 차를 몰고 내려오면 할 말이 없다. 필자가 탄 승합차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 짐작은 했는데 몇 분간은 속도를 내더니 이후 속도를 줄이며 한국가요를 틀기 시작한다.

의아해 하는데 이유가 있었다. 필자의 내자가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 운전석 옆에 놓인 주머니에 우리 돈 2천원을 슬그머니 넣었다.

뜨거운 온천수(83도)를 모아 계란과 옥수수를 삶아 파는 곳.

그 속에는 우리나라 돈이 몇 천원 들어 있어 눈치를 챈 것이다. 신나는 노래가 연속으로 나온다. '샤방샤방', '황진이' 같은 가요가 흐르고 지그재그 길도 부드럽게 돌아 내려온다. 역시 돈의 위력(?)이 대단하다.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비룡폭포(중국명, 장백폭포)로 향한다.

주차장 일대가 많이 변해 있다. 10년 전에는 이 일대가 호텔도 있고 상가도 있었는데 흔적도 없다. 온천을 즐기는 온천장과 폭포 오르는 계단길이 훤히 뚫려 있는 게 전부다. 폭포 전망대까지는 1㎞정도의 거리에 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데크로 난 계단을 잘 다듬어 놓았다.

흰 구름이 파란 하늘 높이 떠 있는 전형적인 여름 날씨를 하고 있는 일대에는 탐방객들로 붐빈다. 천지(天池) 북쪽으로 트인 달문에서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 골짜기를 따라 1㎞정도 흘러 68m의 낙차로 떨어져 만들어진 백두산 유일의 폭포가 비룡폭포(장백폭포)이다. 주위 사면(斜面)에는 아직도 눈이 두텁게 남아 있어 백두산의 깊이를 실감나게 하고 주변 바위산 너머로 천지의 물결이 보이는 듯하다. 예전에는 천지로 오르는 터널을 통해 물가까지 가서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었는데 터널이 무너져 통행을 금하고 있어 갈 수가 없다.

천지(天池), 깊이가 평균 수심 213.3m(최고수심 384m), 둘레가 14.4㎞, 수면고도 2,190m, 총저수량 20억t이라는 수치로 가늠해도 엄청난 산중호수 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달문을 통해 내려오는 폭포의 위용은 엄청나다. 떨어지는 물소리하며 물보라가 만든 물안개와 무지개가 사방을 압도한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폭포로 더욱 신비로운 비룡폭포(장백폭포)가 흘러내려 그 유명한 송화강(松花江)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에 백두산과 만주벌판에 얽힌 우리 조상들과의 인연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일행 모두가 우렁차게 떨어지는 폭포의 함성과 아직도 녹지 않은 폭포 양쪽의 얼음 밭을 헤집고 내려오는 폭포 물을 맞으러 부지런히 발품을 판다.

20여분을 올라 너른 전망데크에서 보는 폭포의 엄청난 장관에 모두들 넋을 잃는다. 비룡폭포를 배경으로 단체 촬영도 하고 젊은 후배들은 백두(白頭)의 기(氣)를 받고자 힘차게 뛰어 오르는 퍼포먼스도 한다.

필자 부부도 두 팔 벌려 비룡폭포를 통해 천지의 기운을 호흡해 본다.

내려오는 길옆으로 섭씨 82℃의 온천수가 뿜어 오르는 '취용천(聚龍泉)'과 흘러내리는 온천수에 손을 담가 보기도 하고 유황냄새도 맡아본다.

뜨거운 온천수를 모아 계란과 옥수수를 삶아 파는 곳에서 이원철(33기) 후배가 후한 값을 치루며 계란을 듬뿍 사서 돌린다. 시장하던 차에 일행들이 반색을 한다. 흰자위는 익었는데 노른자위는 반숙상태다.

뜨거운 온천물에 삶으면 겉부터 먼저 익고 속은 나중에 익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아무튼 비룡폭포덕에 여러 경험을 하게 됐다. 비룡폭포를 떠나 북파산문으로 다시 나온다. 오후 1시 반 우리 일행들이 타고 온 버스에 올라 이도백하로 향한다. 이제 백두산탐방 일정이 끝나는 시점이 됐다.

숨 가쁜 일정으로 서파(西坡)와 북파(北坡)로 비바람을 맞으며 5호경계비의 마천루에 올랐고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는 승합차에 이리저리 뒹굴면서 천문봉에도 올라 운무(雲霧)에 가린 천지도 보았고 구름 걷힌 백두산 최고봉 장군봉(將軍峯)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음은 포항뿌리회 회원들의 성원과 함께한 회원들의 행운이 따른 덕이다.

3박4일의 일정을 오롯이 백두산 탐방만 하기에는 아쉬운 여행이지만 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을 직접 접해 본 감동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다. 남북 분단의 비통한 역사 속에 우리 땅, 백두산을 바로가지 못하고 남의 땅을 밟고 오른다는 게 너무나 야속하지만 이렇게라도 오를 수 있음에 만족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이도백하 부근에 있는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곳 역시 강원도 출신 주인이 하는 음식이라 어제 점심 메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갖은 채소류와 목이버섯, 고추장 등을 넣고 큰 양푼에 비빔밥을 만드는 박의룡(27기) 후배의 손놀림에 군침이 돈다. 오후 3시 꿀맛 같은 비빔밥과 반주로 배를 채운 일행들이 느긋한 마음으로 차에 오른다.

식당 앞 시원스레 뻗어 오른 미인송이 하늘에 맞닿을 듯 키 자랑을 하며 손님을 배웅한다. 여기서 심양까지 300㎞ 이상을 가야한다. 지루한 이동이지만 그간의 여행이 보람차고 추억거리가 많다 보니 차 안이 시끌벅적하다. 가는 길에 농산물을 판매하는 동포가게에 들러 특산품을 사기도 하고 이것 저것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백두산 갈 때 지나던 백산시(白山市)를 통과한다. 온천과 인삼이 유명하며 석탄이 많이 나 화력발전소와 공장들이 많은 공업도시로 꽤나 이름이 난 도시라 한다. 날씨가 험해져 굵은 빗줄기가 차창을 때리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빗속을 달려 통화시(通化市)에 있는 북한식당 '묘향산'에 도착한 시간이 밤 9시가 다 되었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식당에 들어서니 고운 한복차림의 종업원들이 깍듯이 일행을 맞아준다. 2층 넓은 홀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고 한 켠 룸에 현지인 몇이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 중국 어디에 가도 북한음식점은 똑같다. 한복차림 종업원에 무대에서 노래하고 악기 연주로 흥을 돋우는 방식이 변하지도 않았다.

북한식(北韓食)이라 특별한 게 별로 없고 맛도 밋밋한 것 같다. '평양소주'와 '대동강맥주'를 시키니 머뭇거린다. '대동강맥주'는 값이 비싼데도 시키겠냐고 한다.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맥주 값이 중국맥주의 3곱이 넘는 우리 돈으로 3만원 가까운 가격이다. 그래도 몇 병을 시켜 마셔보니 순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노래에 정신이 팔려 평양소주는 맛도 못 보고 포도생산지인 여기서 만든 와인을 청해봤는데 "와인이 뭐예요?"라는 말에 썰렁하고 식상(食傷)한 분위기였지만 같은 동족이라 더욱 연민의 정이 가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분단 60년이 너무나 안타깝다.

언제쯤 우리는 이런 괴리감(乖離感)에서 벗어날까.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나온다.

심양 '바이진호텔(栢晶酒店)'에 도착해 일행들과 중국에서의 마지막 마무리를 호텔방에서 하고 나니 새벽 4시다. 자는 둥 마는 둥하고 공항으로 나간다. 11시30분 출발 OZ346편 아시아나가 정확하게 2시간을 날아 오후 1시30분에 우리를 김해국제공항에 내려준다. 이렇게 '포항뿌리회 백두산 탐방' 일정의 대단원이 끝났다.

그동안 함께 해주신 이성환 회장님 내외와 김성호 수석부회장을 비롯한 후배들에게 감사드리고 가이드 김시온 군과 현지 남도학 가이드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지면으로나마 전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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