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생활터전이자 놀이터, 내년 상주 대종도 건립 추진해, 신도청 시대 옛 명성 되찾을 것

김종한 수필가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찬란한 작고 강한 대한민국이 우리나라다. 전 세계 230여개 국가 가운데 원조받던 200위권 최빈국에서 원조 주는 세계 10위권 무역 대국으로 반세기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류 세계 역사에 유일하게 기록되는 놀라운 기적을 이룬 동방의 자랑스러운 한 민족이 우리다.

서울 심장부에는 경복궁이 있고, 대구 중심부에는 국채보상공원이 있듯이 경상도 뿌리 상주시가지 중앙에 왕산역사 공원이 있다.

해발 71.3m의 동산인 왕산은 상주에서 조선시대 과거(科擧)에 문과 68명이나 급제하고 장원도 많이 배출해 이 산을 장원봉(壯元峯)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산의 높이는 수 십 길에 불과하지만 이 산을 의지해 조선조까지 관아가 있었고, 산 아래에 연못이 있었다. 또 연못이 바다와 연접해 있어서 매 자오시(子午蒔)에 조수(潮水)가 오고 조수가 이정(夷亭)을 지나면 장원(壯元)이 난다고 했는데, 바닷물이 이곳 왕산 연못까지 미치면서 인물이 많이 난 고장이 되었다 상주의 3악(三嶽)인 연악(淵嶽)의 갑장산, 노악(露嶽)의 노음산, 석악(石嶽)의 천봉산이 장원봉인 왕산을 알처럼 품고 있고, 남천과 북천이 병성천으로 합류해 탯줄처럼 영기를 낙동강으로 이어 멀리 바다까지 미치므로, 삼산이수(三山二水), 삼악(三嶽)의 고장이란 이름이 왕산을 중심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조국근대화 시절의 왕산은 4050(사오공) 세대에는 고향땅 상주 왕산일대에 갖가지 애환과 많은 추억거리가 만들어지는 아늑하고 정겨운 동산이었다. 산 정상 소방대 망루에서 근무자가 불이 나면 망루에 달린 종을 요란하게 울리면서 왕산아래 소방대 소방펌프차가 출동을 하면 아이들은 호기심에 뒤 따라가곤 했다. 망루 꼭대기에 경찰서 앰프에는 낮 12시에 정오 사이렌이 정심시간을 알렸다. 밤 11시 반에 통금 예비반 사이렌이 울리고, 밤 12시에 통행금지 온 사이렌이 울리면 도로 통행이 금지된 시절이었다.

근대화 시절 상주군 인구가 25만명 되는 전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웅군이었다. 그 당시 한집에 7~8남매가 기본이며 골목마다 교실 마다 아이들로 북새통이다. 지금 이맘때는 봄 춘궁기에는 양식 떨어지는 '보릿 고개'가 있어 빈곤 해결책으로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정부에서는 출산을 제한하는 산하정책을 펼 정도다.

왕산은 남녀노소의 생활터전이자 놀이터다. 노인들은 시원한 버드나무 아래서 긴 담뱃대를 물고 장기와 바둑에 빠져 있고 어른들은 산책과 데이트 코스며, 우리세대가 고등학교 시절 여름 방학 때 왕산에 가면 읍내 4개 초등학교 출신 친구들을 다 만나니까 반갑고 좋았다.

고대와 근대 큰 고을 경상도 웅주 상주가 조선시대 과거 68명이나 급제시킨 선비와 양반의 고장으로 서울에는 여의도 63빌딩, 대구에는 두류공원 83 대구 타워가 랜드마크(LAND MARK)로 상징하듯이 상주도 선비의 상징인 68마패 기념탑을 왕산 봉우리에 건립하자.

내년도에 새 출범하는 인근 예천 안동 '도청신도시'와 연계하여 과거 관찰사가 있던 왕산 부지에 상주 (경상) 대종도 건립도 추진해 새해나 문화행사에 타종되었으면 바람이다.

왕산이 새 천년을 여는 신 경상도 뿌리 상주의 심장으로 도약에 시동을 걸어 파워와 에너지로 새로운 도청 시대 경북인의 화합과 결속이 위상을 드높여 옛 상주의 명성과 자존심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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