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고무신에 백결(百結) 두루마기 한 벌로 살다간 성철 스님. 선지식의 죽비로 대중을 내리치던 그는 우리 불교사의 자랑이다. 성철 스님은 단박에 깨쳐서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른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와 중도(中道)를 중시했다. 그가 수행하면서 스스로 지킨 12가지 약속을 담은 '12명(銘)'은 유명하다. 12명은 '속세의 헛된 이야기에는 눈길도 주지 않으리라', '돈이나 재물에는 손도 대지 않으리라', '신도의 시주에는 몸도 가까이 않으리라', '비구니 절에는 그림자도 지나가지 않으리라', '고기는 먹지 않으리라', '좋고 나쁜 기회에 따라 마음을 바꾸지 않으리라', '다른 이의 허물은 농담도 않으리라' 등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그 유명한 법어 외에도 성철 스님이 남긴 법어는 많다. 성철 스님이 종정에 취임한 직후 불자들에게 한 말은 "내 말을 믿지 마라"였다. 종정이란 권위를 의식해서 주관 없이 따르지 말고 각자가 분별심을 갖고 살라는 뜻이었다. 성철 스님은 '불전에 공양하지 말고 남을 도와주어라', '천 마디 말보다 한 가지 실행, 실행 없는 헛소리는 천번 만번 해도 소용이 없다'라고 일갈했다.

성철 스님은 생전에 제자 원택 스님에게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불기자심(不欺自心)', 자신을 속이지 말그레이"하고 가르쳤다. 남을 속이지 않고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다짐하고 다짐해도 작심삼일이 되기 십상이다.

최근 미술품 경매 시장에 성철 스님이 쓴 '불기자심(不欺自心)' 휘호가 나왔다고 한다. 경매 시작가격이 4천만원인 이 작품은 성철 스님이 생전에 한 불교신자에게 써준 것이라 한다. 하지만 경매 소식이 알려지자 성철 스님 제자 원택 스님이 이사장으로 있는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쪽이 "경매에 출품된 휘호는 진품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단측은 "생전 성정으로 비춰보면 성철 스님은 글씨를 쓰는 것을 즐기지 않았고, 글씨를 써서 나눠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글씨체도 백련암에 있는 휘호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속이지 말라'는 휘호가 진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어서 우리 사는 사회가 참말로 속된 '속세'라는 것이 세삼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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