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단편 소설 '버니'를 발표하며 등단한 소설가 이기호(42) 광주대 교수는 우리 시대 보기 드문 이야기꾼 중 한 명이다. 무거운 주제도 그의 손을 거치면 독자의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뽑아낸다.

신간 장편소설 '차남들의 세계사'(민음사)도 주제가 전혀 가볍지 않다.

"들어 보아라. 이것은 이 땅의 황당한 독재자 중 한 명인 전두환 장군의 통치 시절 이야기이다"라고 시작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나복만(羅福滿).

9년 동안 신문 배달하고 닭을 튀기면서 전 재산 절반을 운전면허 시험장 브로커에게 건네주고 3년 만에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했지만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은 강원도 원주에 사는 '안전택시' 1년차 신입 기사인 그의 삶을 뒤흔들어 놓는다. 시국 사건에 어이없이 휘말리면서 그의 인생은 정치권력의 폭압과 부조리가 뒤범벅된 세상 속에서 엉뚱하게 흘러간다. 어이없고 기가 막히는 상황이 씁쓸한 실소를 자아내지만, 광기의 역사에서 짓밟힌 한 개인의 삶에 웃음은 이내 깊은 슬픔과 분노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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