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1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가 폭풍우 속에 열렸다. 밤샘기도를 하는 청년들의 열기가 TV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당시 현장 기도회에 참석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쓴 흰색 모자가 돌풍에 휙 날아가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어제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장에서도 이 희색 모자가 유난히 돋보였다. 워낙 모자의 모양이 납작하고 작아서 어떻게 머리 위에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혹시나 바람이 불어 날리지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TV생중계로 보여 진 공항의 영접 행사장에는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 프란치스코 교황 특유의 온화한 미소와 함께 불안감을 지울 수 있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들이 쓰는 이 납작한 모자는 라틴어로는 필레올루스(pileolus)라 부르고, 이탈리아어로는 주케토(zucchetto 작은 바가지)라 부른다. 필레올루스는 여덟 장의 천을 꿰맨 테두리 없는 모양으로 꼭대기에는 손으로 집을 수 있는 꼭지가 달려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서품을 받은 성직자는 이 모자를 쓸 수 있는데 직책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 교황의 주케토는 흰색, 추기경은 빨간색 또는 진홍색이다. 주교와 지방의 대수도원장의 것은 자주색이다.

교황이 쓰는 모자에는 주케토와 대조적인 황금관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새로 교황이 되면 물려받는 관으로 보석 장식이 박힌 '티아라(tiara)'라고 하는 3층으로 된 교황관이다. 신임 교황은 전통적으로 이 관을 물려받아 왔기 때문에 교황즉위 후 첫 미사를 '대관식 미사'라 했다. 신임추기경 부제가 새 교황에게 교황관을 씌워주는 의식이었다. 하지만 교황 바오로 6세를 끝으로 '티아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요한 바오로 1세가 티아라 대관을 거부한 이후 교황청이 '티아라'를 뉴욕경매장에 내 놓았고, 그 판매금액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민풍 패션으로 유명하다. 장식 많은 의복 대신 수수한 흰색 수단에 검은 구두를 신는다. 이번 방한 때도 한국 수녀회가 만든 값싼 소재의 제의를 입는다고 한다. 수수한 의복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목에 걸고 있는 철제 십자가와 머리 위의 흰 주케토가 더욱 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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