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은 '글'을, 서양은 '말'을 중시한다. 동양에선 '명문'이 서양에선 '명연설'이 발달했다. 영국과 프랑스와의 100년전쟁 때 아쟁쿠르전투서 영국왕 헨리5세는 명연설로 영국군 대승의 주인공이 됐다. 1415년 8월25일 헨리 5세는 프랑스북부 아쟁쿠르에서 보병 8천명, 기병 2천명을 거느리고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했다. 그러나 전염병과 긴 행군으로 영국군은 6천명으로 줄었다. 영국군과 대치한 프랑스군는 2만5천명으로 영국군보다 약 4배나 많았다. 우세한 병력에 우수한 무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전투 전날 쏟아진 폭우로 사기마저 뚝 떨어진 영국군은 프랑스군에 비해 아주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 때 헨리5세는 영국군 장병들에게 열변을 쏟아냈다. "우리는 수적으로 열세다. 게다가 지쳤다. 하지만 피를 나눈 형제들이다. 제군들은 나와 함께 피를 흘렸기 때문에 내 형제가 됐다. 영국에 남은 남자들은 지금 잠자리에 누워 여기에 있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할 것이다. 함께 싸운 우리가 목소리를 높일 때 그들은 남자인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오늘, 살아서 무사히 귀향하는 자는 오늘을 기념하는 그날에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나를 따라 영국의 영광을 위해 싸우자" 헨리5세의 감동적인 연설이 끝나자 영국군은 사기가 충천, 결전의지를 다졌다. 전투 결과는 프랑스군이 12명의 귀족, 1천500명의 기사, 4천500명의 병사가 전사한 데 비해 영국군 전사자는 112명에 불과했다. 영국군의 대승이었다.

2011년 미국 애리조나 주 총기 난사 참사 떼 오바마 대통령의 추모 연설은 슬픔과 분노에 차 있던 온 미국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총탄에 희생된 9살 소녀 크리스티나를 언급하면서 "나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크리스티나가 상상한 것과 같이 좋았으면 한다. 우리 모두는 아이들 기대에 부응하는 나라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한 뒤 '51초 침묵'이 미국인들 마음을 흔들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재임 중 가장 극적 순간'이라 했다.

"정치가 정치인들 잘 살라고 있는 건가?"경제와 민생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는 정치권을 향한 대통령의 직격탄은 정작 국민들이 퍼붓고 싶은 질타였다. 오랜만에 속 시원한 촌철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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