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과 공감의 우리시대, 이기적인 편견의 삶 끝내고 이타적인 삶으로 바꿔야

김기포 기계중앙교회 목사

인디언들에게 내려오는 우화 가운데 '늑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인디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그런데 그 두 마리의 늑대는 늘 끔찍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 한 마리는 악이야. 그 악한 놈은 화, 질투, 슬픔, 후회, 욕심, 오만, 자기연민, 죄책감, 억울함, 분노, 열등감, 거짓말, 헛된 자존심 우월감 등인데 바로 우리들의 자아라는 것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선인데 그 놈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평온함, 겸손, 친절, 자비, 공감, 너그러움, 진실, 연민 등 인데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란다. 이런 똑같은 싸움은 네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손자가 인디언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질문을 한다.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는 말한다. "네가 먹이를 주어 키운 늑대가 이긴단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누구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가?

현대 사회는 선과 악의 싸움이요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긍정과 희망의 스토리에 굶주려 있다. 우리는 비판과 책망과 공격을 아끼고 우리 안에 잠재된 믿음과 선과 희망의 씨앗을 일깨우는 진정한 이야기기꾼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는 공존과 공감의 시대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는 독불장군이 없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독단 그리고 홀로서기만을 강조하던 이기적인 편견의 시대는 끝내야 한다.

나를 반대하는 사람은 나의 적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잘못됐다고 이방인 취급하거나 야만인 취급해서는 안 된다. 우리사회는 흑·백사상 때문에 불신이 심각하다. 서로 믿지 못하기에 불행한 사회가 됐다. 나는 나만의 세상이 있다고 착각하지만, 정작 내가 보고 살아가가는 세상은 이미 타인이 본 세상이다. 우리는 남의 고통과 시련을 나의 아픔과 상처로 느끼고 내가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만큼 남을 사랑하고 인정 할 줄 아는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루이스 뒤프레는 이런 말을 하였다. "대화를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입장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몰두할수록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나의 정체성도 더욱 확실해진다"

러시아 철학자 미하일 바르친은 "존재한다는 것은 교류한다는 뜻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위해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면의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은 없다. 그는 전적으로 항상 주변 속에 있으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의 눈을 보고,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공감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해야 한다.

공감의 시대에 우리는 이기적인 삶에서 이타적인 삶으로 바꿔야 하고, 자기애의 익숙한 삶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별 볼일 없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셨다. 그는 병들고 약한 사람들의 위로자가 되셨다. 특히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든든한 동행인이 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보여준 인간적인 나약함의 자리야말로 인간의 아픔을 공감하는 최대의 사랑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나약함을 공감하는 언어이며 그것은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소통과 공감은 낮은 곳에 있다. 지금 나는 누구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가?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